[ 대통령 중대한 위법행위 없다 ] 朴鍾普 < 한양대 헌법학 교수 > 지난 12일 국회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의결함으로써 대통령의 권한행사가 정지됐다. 이제 헌법재판소는 서류검토와 구두변론을 거쳐 노 대통령이 과연 파면당할 만한 중대한 위법행위를 했는지 결정할 것이다. 먼저 지적할 것은 탄핵사태의 '원인'과 탄핵의 '사유'는 다르다는 점이다. 자기를 대통령에 당선시킨 정당을 쪼개 스스로를 소수파로 전락시키는 데서 시작해, 탄핵소추안이 발의된 마당에 총선 결과를 재신임과 연계하겠다며 오기를 부리기까지, 노 대통령이 탄핵안 가결을 자초한 면이 있다는 평가는 '탄핵사유'와는 무관하다. 헌법이 정한 탄핵사유는 고위공무원이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이다. 탄핵사유가 되려면 첫째, 피소추인 본인의 행위여야 한다. 그러므로 "측근들과 참모들의 권력형 부정부패"는 탄핵심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물론 대통령이 직접 국세청에 감세압력을 행사했다거나 측근들의 정치자금이나 뇌물수수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입증되면 탄핵사유가 될 수 있다. 둘째, 직무상 행위여야 한다. 대통령은 모든 행정업무를 총괄하는 직무를 수행하므로 그 범위가 매우 넓다. 그러나 구체적인 직무관련성은 뇌물죄와 선거법위반죄의 경우가 같을 수 없다. 대법원 판례는 대통령에게 금품을 공여하면 바로 뇌물공여죄가 성립하고,대통령이 실제로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여부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본다. 그러나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거나 지지자들 앞에서 연설한 것이 직무에 속하는지는 의문이다.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며 장관을 지휘·감독하여 구체적 사항에 직접 또는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셋째, 위헌·위법한 행위여야 한다. 탄핵은 정치적 책임을 추궁하는 제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국민경제와 국정을 파탄시켜 민생을 도탄에 빠뜨렸다"거나 잦은 퇴진발언으로 국민을 불안케 한 것은 탄핵사유가 될 수 없다. 지지자들에게 "시민혁명"을 촉구하거나 특정정당을 "반개혁정당"으로 규정한 것만으로 위법이라고 하기 힘들다. 공직선거법은 선거에 관한 단순한 의견 개진이나 통상적인 정당활동을 선거운동에서 제외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선거운동을 '당선 또는 낙선을 위한 능동적,계획적 행위'로 좁게 해석한다. 국론을 통합해야 할 대통령이 오히려 국민을 분열시켰다는 윤리적 비난은 탄핵의 법적 근거가 될 수 없다. 만약 '청와대의 조직적 선거개입'이 확인된다면 사전선거운동죄나 직권남용죄에 해당할 수 있다. 선관위가 위법성을 인정했는지 여부는 탄핵심판과 직접 관련이 없다. 선관위의 사실인정과 법률해석은 헌법재판소를 구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넷째. 대통령을 파면할 만한 '중대한 사유'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탄핵제도의 목적은 부적격한 공직자가 권한을 계속 행사함으로써 국가적 위난이 발생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도로교통법 위반이나 품위손상과 같은 사소한 잘못을 추궁하는 수단이 아니다. 같은 행위라도 직무의 성질에 따라 위험의 정도가 다르므로 탄핵여부도 달라야 한다고 믿는다. 일반원칙선언인 공직선거법 제9조(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도 중앙선거관리위원이 위반하면 탄핵사유가 될 수 있다. 정치활동이 허용되는 정무직 공무원인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단순히 특정정당 지지의사를 밝힌 경우라면 탄핵사유로는 부족하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결정하면 탄핵소추의 정당성은 추인받는다. 헌재가 기각결정을 하면 대통령의 권한행사를 정지시켜 국정혼란을 야기한 국회의 다수파는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국민은 국회법제사법위원장이 권력남용,수뢰,선거법 위반 등의 사실을 입증하는지 냉정하게 지켜볼 일이다. 감정을 자제하고 이 위기가 회복할 수 없는 국익손상으로 번지지 않도록 협력해야 한다. 이성적인 토론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제도를 개선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이번 사태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과시하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 헌법재판소가 정치에 휩쓸리지 않고 법적 정의에 입각해 갈등을 해소함으로써 분열할 뻔한 국민을 재통합하는 역량을 발휘하기를 기대한다. -------------------------------------------------------------- [ 국회소추는 정당한 권한행사 ] 姜京根 < 숭실대 헌법학 교수 >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가 여론의 집중 포화를 받고 있다.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불만은 있지만 그렇다고 탄핵까지 갈 만큼의 사유는 아니지 않는가 하는 이유에서인 것 같다. 문제는 이를 둘러싼 찬·반 시민단체가 촛불 시위와 규탄 집회를 여는 등 감성적·전투적으로 흐를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근대 이후 자유주의 국가 제도가 시민의 이성에 기초해 세워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헌법질서에 따른 이성적인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도 요구된다. 이와 관련하여,먼저 이번 국회의 탄핵소추 '사유'가 합헌성이 없다는 견해가 있으나 이는 우리 헌법의 탄핵제도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잘못된 비판이라고 본다. 국회의 탄핵소추권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권한과 그 성격이 다르다. 탄핵 심판이 헌법재판소의 재판적 권한에 가깝다면, 탄핵 소추는 국회의 대정부 견제권에 가깝다. 따라서 국회의 대통령 탄핵 사유가 되는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기준보다 넓게 해석해야한다. 헌법재판소도 이미 1996년 2월9일 "헌법은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이 국회의 재량행위임을 명문으로 밝히고 있고, 헌법 해석상으로도 국정통제를 위해 헌법상 국회에 인정된 다양한 권한 중 어떠한 것을 행사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가에 대한 판단권은 오로지 국회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는 민사 및 형사 소송 등의 각 재판절차를 적용하는 등 재판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또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는 대통령의 불소추특권(헌법 제84조)을 고려할 때, 이번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의 사유가 궁극적으로 헌법재판소에 의해 인용될 만큼 헌법이나 법률 위반성에 긴장도가 있는 사건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헌법이 탄핵을 요구하는 자와 심판하는 자를 분리하여,국회에 대의정치적 입장에서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권한을 자유로운 재량으로 부여했다는 점 등을 생각하면, 국회가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등의 사유를 들어 탄핵소추를 발의하고 이를 의결시킨 것을 위헌·위법이라며 비판할 수는 없는 일이다. 더욱이 대선자금 수사가 만 1년을 넘어 중간수사 결과 발표가 있었고 제17대 4·15 국회의원 총선까지 가야 하는 헌정의 현실에서 대통령의 선거중립의무 문제는 나름대로 이유있는 탄핵소추의 사유가 될 수 있다. 정치자금 비리에 관련하여 국민에게 진심으로 참회하지 않는 국회를 필자 역시 강하게 비판하고 있지만,이번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의 과정은 그것과는 별개로 구분해 평가해야 한다. 우리 헌법상의 탄핵소추권은 탄핵대상자의 행위가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과'법률'이 아니라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경우에,그리고 '위반'이 아니라 '위배'한 경우에 주어진 일반적·포괄적 권한이다. 탄핵사유를 반역죄 수뢰죄 배임죄 독직죄 등과 같이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나라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독일 프랑스와 같은 국가에서는 대통령과 기타 탄핵대상자를 구별해 대통령에 대해서는 헌법위반 또는 반역죄 등으로 탄핵사유를 한정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과도 다르다.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면 대통령 외에 국무총리·국무위원·행정 각부의 장, 나아가 검찰총장 등 법률이 정한 공무원 등에 대한 탄핵소추 역시 어려워질 것이다. 정부는 대통령의 특별사면시 국회의 의견을 구하도록 한 사면법 개정안을 국회로 환부해 재의를 요구할 계획이라고 한다. 대통령은 국회의 본질적 권한인 법률안 제정권을 원점으로 돌릴 수 있는,마치 탄핵소추권 발의에 의해 대통령의 권한수행이 정지되 듯 막강한 권한을 가지는 것이다. 국회의 탄핵소추권 역시 이에 상응해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번 국회의 탄핵소추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으며 법절차를 통한 합헌적 행위로 헌정의 공백을 야기한 것이 아니다. 탄핵소추의 타당성에 대한 최종적 판단은 헌법재판소의 몫으로 남겨져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