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산업에 대한 외국자본의 지배력이 최근 들어 크게 높아져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남미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투자펀드를 중심으로 한 외국자본의 국내 은행산업 진출이 가속화되면서 손쉬운 가계대출만 늘어나는 등 각종 부작용이 속출, 정부의 은행 민영화 작업에 속도조절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한국은행은 21일 '외국자본의 은행산업 진입 영향 및 정책적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외국계 은행들이 안전위주의 자산운용을 선호함에 따라 국내 성장동력과 직결되는 기업대출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국내은행에 대한 외국자본 지배의 이런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기관투자가 중심의 국내 자본 육성 국내 진입 외국자본의 국적 다변화 외국자본의 성격 및 건전성에 대한 심사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한은은 강조했다. ◆ 남미 수준으로 높아진 외국인 지배력 지난해 말 한국 은행산업에 대한 외국자본 점유율(총자산 기준)은 30%로 일본(7%) 말레이시아(19%) 필리핀(15%) 태국(7%) 중국(2%) 등 아시아 주요국 가운데 최고 수준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같은 점유율은 미국(19%) 노르웨이(19%) 스위스(11%) 독일(4%) 등 주요 선진국보다도 크게 높고 금융위기 과정에서 해외자본이 대거 유입된 칠레(47%) 아르헨티나(32%) 브라질(30%) 볼리비아(36%) 콜롬비아(22%) 등 남미 국가들과도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6월말 기준 국내 은행권의 외국인 지분율(주식시장을 통한 간접투자 포함)도 38.6%로 지난해 말(24.9%)에 비해 13.7%포인트나 급등했다. 외국인 지분율은 △1998년말 11.7% △1999년말 20.0% △2000년말 25.3% △2001년말 24.5% 등으로 가파른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 외국계 은행의 지나친 장삿속 한은에 따르면 제일ㆍ외환ㆍ한미은행 등 외국계로 분류되는 3개 은행은 내국계 은행(조흥ㆍ우리ㆍ신한은행+지방은행)에 비해 기업대출을 더 많이 줄이고 가계 대출은 크게 늘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계 은행의 총대출금 가운데 기업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9월 말 현재 49.6%로 지난 98년말(82.9%)보다 33.3%포인트 감소한 반면 가계대출 비중은 10.4%에서 45.6%로 35.2%포인트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국내은행의 기업대출 감소폭과 가계대출 증가폭은 각각 24.8%포인트와 26.4%로 외국계 은행에 비해 모두 작았다. 한은 관계자는 "외국계 은행이 가계대출 등 손쉬운 장사에만 치중해 국가 경제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며 "자산운용도 국공채 등 위험도가 낮은 유가증권 위주로만 하고 있어 국내 금융시장을 활성화하는 데에도 기여도가 낮다"고 지적했다. ◆ 은행 해외매각만 능사 아니다 한은은 외국자본 지배의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기관투자가 중심의 국내 금융자본 육성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서영만 한은 은행국 차장은 "은행 민영화 주체는 국내자본이 되는게 바람직하다"며 "정부가 현재 추진중인 은행 민영화작업도 국내 금융자본의 성장 정도를 봐가면서 신중히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정부 지분을 불가피하게 외국 자본에 넘기는 경우에도 국내 은행의 해외진출과 국제업무 발전 가능성을 고려해 펀드보다는 은행 계열 외국 자본에 매각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