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옥섭 태평양 기술연구원장(52·전무)의 왼쪽 얼굴 아래엔 작은 흉터가 몇개 있다. 새 화장품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직접 얼굴에 발라보다가 생긴 것들이다. "지난 90년대에 기능성 화장품인 '아이오페'를 개발할 때였어요.실험 도중 얼굴에 발라봤는데 원료 농도가 너무 높아 허물이 벗겨져 병원에 두 번이나 다녀왔습니다. 다행히 고생 끝에 만든 신제품은 시장에서 히트를 쳤죠.이 흉터가 저에겐 '훈장'인 셈이죠." 서울대 응용화학과를 졸업한 이 원장은 지난 76년 태평양에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기초제품연구팀장과 제품연구소 부소장,기술연구원 부원장을 거쳐 2000년 기술연구원의 수장을 맡았다. 입사 후 줄곧 연구소에서 화장품 신제품 개발에 몰두해왔다. 연구원 시절 그는 연구 프로젝트를 맡으면 모든 일을 잊어버리고 일에만 매달리는 성격 때문에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많이 남겼다. "시내버스로 연구소에서 집이 있는 시흥까지 출퇴근하던 때였습니다.밤 늦게까지 실험을 거듭하다가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머릿속은 못다한 실험 생각으로 가득차기 일쑤였습니다.어떻게 하면 해결점을 찾을 것인지 고민하다가 종점인 안양까지 가버린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어요." 연구에 대한 열정은 잠을 자면서도 이어졌다. 이 원장은 "꿈에서 원료 배합비율을 어떻게 하면 될 것인지를 계시받고 새벽 5시에 일어나 연구실로 향한 적도 여러번 있었다"며 "하지만 꿈에서 떠올린 아이디어가 실제 제품으로 성공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학구열도 강해 연구원 재직 중 한양대에서 공업화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데 이어 지난 97년에는 서울대에서 박사학위까지 취득했다. 화장품 원료 분야에서 46건의 특허도 갖고 있다. 2000년에는 한국경제신문사가 제정한 다산기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원장은 후배 연구원들에게 진실할 것을 늘 주문한다. 엔지니어는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자신과 소비자에게 떳떳할 수 있는 양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태평양 기술연구원은 노화 미백 육모 등을 중점 연구분야로 선정하고 관련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연구원 산하의 의약·식품연구소를 활용,비만 염증 면역 등 분야에 연구력을 집중하고 있다. "프로젝트 기획에서 개발과정,평가 등을 한눈에 파악하고 관리할 수 있는 '통합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체제를 구축해 연구의 효율성을 높이겠습니다." 이 원장은 연구시스템 개혁에 온힘을 쏟겠다고 강조했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