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늦여름,서울 창전동 이랜드 본사건물 7층 회장실에서 선문답 같은 대화가 오갔다. "장 이사,지식경영최고책임자를 맡아주시오." "예! 지식경영이 뭡니까?" 박성수 회장의 갑작스런 부름을 받고 회장실로 들어선 장광규 지식경영최고책임자(CKO·전무·당시 이사)는 박 회장이 뭘 지시하는건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공대를 졸업한 후 10년 넘게 원자력연구소에 근무하다 이랜드에 입사한 그에게 '지식경영'이란 말은 생소하기만 했다. 장 전무는 회장실을 나와서 다시 생각해 봤지만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가야할지 막막했다. 그렇다고 못하겠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는 95년부터 97년까지 전사적자원관리시스템(ERP)구축 책임을 맡았지만 회사 수익성에 별다른 기여를 못해 박 회장에게 '빚'을 지고 있는 입장이었다. 지금은 없어서는 안 될 주요 경영도구인 ERP시스템이 당시 장 전무에게는 박 회장의 요구를 거스를 수 없게 만든 하나의 부담이었던 것이다. "당시 정보화사업 인프라를 미리 갖추지 않았더라면 지식경영도 난관에 봉착했을 것입니다.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모르겠어요."(장 전무) 1980년 서울 이대앞에서 두평 남짓한 매장으로 출발한 이랜드는 품질과 가격을 무기로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급성장했다. 90년대 초반 '헌트'란 브랜드를 내놓으면서는 매년 3백% 이상 매출이 늘어 "이랜드는 매일 추석같다"는 말까지 생길 정도였다. 전성기때는 매출액 1조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시장에 새로 진출한 대기업들과 경쟁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판매가 위축되고 2%를 밑돌던 재고가 10%까지 늘었다. 설상가상 97년에는 외환위기까지 덮치면서 생산 원가가 2배로 늘었다. 성장은 커녕 살아남는 것이 급선무였다. 구조조정에 들어가 98년 28개이던 계열사는 8개로,72개이던 사업부는 51개로 줄었들었다. 임직원은 3천6백여명에서 1천8백여명으로 절반 감축했다. ERP구축을 담당했던 장 전무도 책임을 지고 회사를 떠나 백의종군했다. "당시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무언가 돌파구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됐지요." 박 회장은 외환위기 당시 어려웠던 상황을 극복하기위해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이 지식경영이라고 소개했다. 해외출장 때도 책과 신문을 한 보따리씩 싸들고 다닐 만큼 독서광인 그는 그 즈음 피터 드러커의 책을 즐겨 읽었다. 법학 철학 정치학 경영학 등 사회과학 전분야를 두루 섭렵한 경영학의 대가 드러커가 21세기를 앞두고 내놓은 미래기업,자본주의 이후의 사회,21세기 지식경영 등이 박 회장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이다. "지식경영은 진행되는 과정에서 CKO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업무에 필요한 지식 리스트를 밝혀 내고,그 지식들을 찾아내는 과정을 체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하지요.그리고 중도에 결코 포기하지 않는 끈질김도 CKO의 중요한 요소라고 봅니다." 장 이사를 CKO로 선임한 박 회장은 이 후 실무는 모두 CKO에게 맡긴다. 그러나 지식경영이 뭐냐고 묻는 장 이사가 잘 해 나갈 수 있을지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최규술 기자 kyus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