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에 마치 둥근 식탁보처럼 하얀 벚꽃이 피어 있다. 며칠 날씨가 따뜻하더니 초여름이 돼 가고 있다. 봄이 꽃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며칠 전 길에서 우연히 아버님의 친구분을 만났다. "목월이 세상을 떠난게 엊그제 같은 데…"라며 길에서 내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였다. 그날 밤, 눈물이 눈끝을 타고 내리던 그분의 얼굴이 어른거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버지와 헤어진지 2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건만 날이 갈수록 가슴에 사무치는 그리움은 더해가고, 5년 전 내 곁을 떠난 어머니가 지금도 전화를 걸면 곧 응답할 것 같은 생각에 깜짝 놀라고, 그러다가 기억의 먼지속에 감추어져 있던 일들이 피어올랐다. 내가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머니는 대학에서 보낸 하루를 꼭 물어보곤 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잘 다녀왔니?' 혹은 '힘들지 않았니?'하는 물음이 아니라, '오늘은 무엇을 배웠니?' 혹은 '무엇을 가르치시더냐'하고 물었다. 그 때마다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처음 배우게 된 사회구조라든가 형이상학이라는, 대학에서 듣게 된 말들이 어머니에게는 생소한 뜻이 될 것이고, 또 구조주의라든가 하는 전문용어들을 어머니가 이해할 리 없다는 생각에 그냥 과목 이야기만 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그래…' 하면서 자꾸 내 노트를 살피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묻는 내용이 똑같았다. 내가 대학교수가 된 어느 날이었다. 아침 강의가 없어서 안방에서 어머니와 한가하게 앉아 있었다. 그 때 어머니는 "내가 여학교를 졸업할 때만 해도 대학에 진학하는 친구들이 아무도 없었어"하는 것이었다. 무심히 흘린 어머니의 이 한마디가 내 귀에서 잠시 맴돌았다. 나는 곧 "어머니는 대학에 진학하고 싶었어요?"하고 물었다. 어머니는 내 얼굴을 보며 가만히 웃기만 했다. 몇달이 흐른 어느 날 저녁, 나는 세수하려고 목욕탕에 들어갔는데 비누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가 항상 비누를 장롱 서랍에 넣어두던 것이 생각나서 안방에 들어가 장롱 서랍을 열었다. 그러나 그 속엔 비누는 없고 책만 몇권 있었다. 모두 내가 신입생 때 기초과목으로 들었던 개론책이었다. 어머니는 이 책들을 틈틈이 읽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얼른 덮어두었다. 그해 가을 아버지와 함께 고향으로 가는 열차안에서였다.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나의 대학교재를 틈틈이 읽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일제시대에 학교를 다녀서 대학에 가는 것이 요사이처럼 쉽지 않았어. 네 엄마는 가슴에 그것을 꼭 품고 있어서 그렇지" 하였다. 어머니에게 그것은 이루지 못한 꿈이었고, 마음에 뭉친 한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이 한을 제대로 살펴볼 수 있는 눈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나하고 달랐다. 어머니의 마음을 알기에 새로 좋은 책을 구입하면 어머니에게 펼쳐 보이며 책의 내용을 대충 설명하곤 했다. 일본어로 된 문학이론 책도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내보이며 어떤 책이라서 샀다는 것을 설명하곤 했다. 곁에 있는 대학교수인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어머니에게는 꼭 설명을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에게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기뻤던 일 중에 잊혀지지 않는게 어떤 것이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너무 기뻐하며 "그래 내가 아버지에게 딱 한가지 잘해드렸다고 자랑할 수 있는게 있지. 그것은 아무리 돈이 없어 끼니를 걱정해도, 아버지가 월급에서 감당할 수 없을만큼 책을 사와도 나는 한번도 책을 샀다고 불평해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시를 쓰며 산다는 것에 대한 자긍심도 대단했지만, 대학이라는 곳에서 얻는 학문의 세계에 대한 앎의 욕구가 한으로 맺힐 만큼 대단한 여성이었다. 세상을 사는 동안 지적 호기심과 앎에 목말라하며 글 쓰는 남편을 이해한 어머니에 관한 추억은 새삼 '나는 과연 내 가족과 의지하고 위로하고 이해하며 사는가'를 살펴보게 한다. 어머니가 대학에 다니지 않은 것을 밝히는 것이 마음에 걸리면서도…. < budget12@yaho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