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은 국내 산업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전쟁이 시작되면서 수출상품 선적보류와 대금회수 지연 등 수출차질 피해가 잇따랐고 가뜩이나 위축된 소비심리는 더욱 움츠러 들었다. 그러나 다행히 전쟁이 단기전으로 끝날 것이 확실시되면서 수출업체들을 비롯한 산업계는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피해가 상당 폭 줄어들 것으로 관측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모습이다. 한때 무서운 기세로 치솟던 국제유가가 점차 안정되면서 전쟁기간 우려했던 에너지 수급 대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수출차질 =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개전 직전인 지난 3월18일부터 수출업체들로부터 피해신고를 접수한 결과 10일 현재 수출피해는 454건에 금액은 5천950만달러를 넘어섰다. 수출상담 중단이 226건에 4천143만달러로 가장 많은 피해가 발생했고, 수출대금회수 지연 82건에 383만달러, 선적보류 132건, 1천345만달러였다. 또 선적서류 송달차질 및 현지 신용차질도 잇따랐다. 수출상담 중단은 전쟁진행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재개될 수 있어 대금회수 지연과 선적보류가 수출업계의 실제 피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현대자동차[05380]는 지난달 쿠웨이트로 보낸 수출물량 240대를 하역하지 못해도착지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로 급히 바꾸는 등 수출품 운송 등에 애를 먹었다. 이에 따라 이라크전을 전후한 1개월간 대 중동 수출은 목표의 80%선에 그쳤다. 섬유업계에도 피해가 잇따르면서 지난달 중동지역 직물수출 실적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60%나 감소했다. 대우인터내셔널[47050]의 경우 유엔의 `오일 포 푸드'(Oil For Food) 프로그램에 따라 이라크에 의약품과 식료품, 건설용 중장비 등 1천500만달러의 상품을 수출하는 계약을 맺어 놓고도 이라크전으로 아직까지 선적을 못하고 있다. 전쟁이 끝나면 이 계약이 유효할지 여부조차 불투명한 상태. 항공업계는 이라크전의 최대 피해업종이었다. 개전 이전부터 유가급등에 따른비용 증가로 어려움을 겪은데다 전쟁이 시작되자 항공기 테러 위험 증가와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까지 악재가 겹쳐 항공수요가 급감했다. 대한항공[03490]은 3월 평균 탑승률이 72%로 작년 대비 8%포인트 낮아졌고 특히 미주행의 경우 탑승률이 13%포인트나 떨어졌으며, 4월 예약률도 75%로 작년 동기대비 12%포인트 낮아졌다. 아시아나항공[20560]도 3월 상당수 노선의 탑승률이 10%포인트 가량 떨어졌다. 개전 직전 위기감이 고조되자 KOTRA와 대우인터내셔널 바그다드 주재원이 인근요르단으로 긴급 대피한 것을 비롯해 국내 기업들은 중동지역 주재원들을 재배치하는 등 전시 비상체제에 들어갔다. ◆전쟁 틈새특수 =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전쟁으로 나름대로 특수를 누린 분야도 있다. 이라크전으로 세계경제에 적신호가 켜진 가운데서도 방산과 건설, 전자, 조선등 일부 업종의 경우 포화의 틈새를 비집고 짭짤한 재미를 봤거나 이번 전쟁을 계기로 수주가 늘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 현대종합상사[11760]는 100만달러 상당의 군복 3만세트를 아랍에미리트에 공급한데 이어 400만달러 상당의 방탄조끼 1만개에 대해서도 공급조건을 협의하고 있다. 91년 걸프전 당시 쿠웨이트에 방독면 30만개(3천만달러 상당)를 수출했던 삼성물산[00830]은 이번에도 삼공물산이 생산한 방독면 20만개를 900만달러에 쿠웨이트정부에 공급했다. 일부 전자업체의 경우 지난 2001년 9.11테러 당시 파괴된 미국 펜타곤 건물에모니터와 PC 수요가 쇄도했던 일을 예로 들며 은근히 IT 관련 제품의 성수를 기대하고 있다. 조선업계도 전쟁이 끝나면 물동량이 늘어 운임상승 등 해운시황이 살아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결과적으로 선박 수주도 활기를 띨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대상사와 삼성물산 등 종합상사들은 중동지역 지사 등 해외 네트워크를 총동원, 의약품과 생필품, 건설자재, 중장비 등 수요증가가 예상되는 물품의 수주 가능성을 타진중이다. ◆에너지 수급 `이상무' = 정부는 이라크전 발발에 대비해 제한송전이나 석유배급제 등 듣기만 해도 `겁나는' 에너지대책을 잔뜩 세워놓았지만 다행스럽게도 실제시행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고유가 현상에 따라 2월17일과 3월12일 2차례에 걸쳐 시행된 석유수입부과금 인하도 전쟁 이전에 이뤄진 조치다. 이는 30달러를 웃돌던 두바이유값이 개전 1주일 전부터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지난 7일에는 작년 11월 이후 처음으로 22달러대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또 이라크 주변국의 유전피해도 없어 중동으로부터의 원유구매가 정상적으로 이뤄진데다 페르시아만에서 호르무즈해협을 거치는 원유 수송도 차질없이 진행되면서우려했던 수급대란은 없었다. 석유비축량은 개전 직전 97일분에서 지난달 26일에는 민간부문의 재고부담 때문에 93일분까지 줄었지만 지난 7일 현재 98일분으로 다시 늘었다. 천연가스 재고도 개전 당시 3-4일분 수준이었지만 4월 들어 5-6일분으로 늘어났고 전력공급 예비율도 20%대를 유지하고 있어 수급에 문제가 전혀 없는 상태. 한때 30달러를 넘던 두바이유 10일 평균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승용차강제10부제와 조명.영업시간 제한 등의 에너지절약 대책도 시행되지 않았다. 무역협회 이라크전 비상대책반 김재숙 팀장은 "대 중동 수출 비중이 4.6%로 적은데다 전쟁이 단기전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 업계의 피해가 당초 예상보다 적을것으로 보인다"며 "전쟁이 완전 종결되면 불확실성이 제거됨에 따라 자동차와 무선통신기기 등의 수출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kong@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