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임기 5년의 노무현정부가 출범한다. 새 정부의 출범은 반길 만한 일이지만,내외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산적해있어 마음이 무겁다. 북핵문제,대북비밀 송금문제,미국과의 관계 재설정,유가급등,하강국면에 접어든 경제,대구지하철 참사까지 겹쳐 민심조차 어수선하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처음부터 위축될 필요는 없다. 위기나 어려움은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정부는 스스로를 '참여정부'라고 했지만 소수정부라는 점이 특징이다. 반이 넘는 유권자들이 지지하지 않았고,국회는 여소야대의 상황이다. 또 여당은 이겼으나,승리감을 만끽하기는커녕,내분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노 대통령이 스스로를 '반(半)통령'이라고 지칭한 것이 이해가 간다. 한편 소수정부로서 한계를 절감하겠지만, 그 한계가 입헌주의가 정해준 한계임을 명심하면서 그 범주안에서 국정을 운영할 때 소수정부의 철학과 미학이 탄생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임 김대중정부는 소수정부라는 점을 애써 부인하려다보니 많은 무리수를 두게 됐다. 한국의 상황에서 소수정부는 나름대로의 한계가 있지만,대통령의 권한은 막강하기 때문에 정계개편을 통해 다수정부로 변신하려는 유혹을 받게 된다. 혹은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포퓰리즘을 통해 국민에게 직접 다가가고자 하는 시도를 하게 된다. 또 일부 시민단체들과 손을 잡고 공식적 정치과정을 우회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유혹들은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반지'의 유혹에 비견될 수 있다. '절대반지'는 매혹적이지만,절대반지를 끼는 순간 스스로를 파멸시키게 된다. 소수정부의 미학이란 뭐니뭐니해도 지지자들의 함성에 묻히기 보다 반대자나 비판자들의 쓴소리를 경청하는데서 나온다. 출범 후 즉시 노무현정부는 개혁에 나설 것이다. 이미 인수위에서부터 많은 개혁 메시지가 쏟아져 나온 만큼 예상되는 일이다. 낡은 정치의 청산을 부르짖었고,기업에 대해서도 일련의 개혁조치를 예고해 놓은 상태다. 개혁은 민주화 이후 모든 정부의 화두가 됐고,정부는 하는 일마다 개혁의 이름으로 정당화시키기도 했다. 그 결과 '개혁과잉' 혹은 '개혁피로군'이라고 불리는 현상이 초래되기도 했다. 현 시점에서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없겠지만,개혁을 하는 과정에서 개혁의 주체와 개혁의 대상을 편의주의적으로 나누어서는 곤란하다.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권력의 주체가 되고,권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개혁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부조리한 일은 없다. 개혁은 정치개혁이든 경제개혁이든 합리적인 것이 돼야 하기 때문에 개혁을 비판한다고 해서 '기득권자'니 '수구세력'이니 하고 낙인을 찍는 일도 없어야 한다. 개혁의 구체적 대안에 관한 한 '토론공화국'답게 투명하게 결정될 것으로 기대한다. 일단 정치개혁에 관한 아젠다에 대해서는 비교적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할 수 있다. 고비용 정치구조,정당의 민주화,제왕적 권력구조의 개혁은 그 동안 필요성은 인정됐으나,정치적 의지가 부족해 시행되지 못한 것들이다. 그러나 경제영역의 개혁은 좀 다르다. 개혁 내용에 관한 합의가 형성돼 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집단소송제 도입 등의 사안에서 일방통행식의 밀어붙이기보다는 양방통행의 공론을 통해 개혁 대안이 제시돼야 할 것이다. 밀어붙이기식 개혁의 문제는 '말을 강가로 끌고 갈 수는 있으나,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는 준칙으로 요약된다. 개혁을 할 때 명심해야 할 일은 우리 공동체가 항해하는 배라는 점이다. 항해하는 배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그 배에 대해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처럼 메스를 가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을 깡그리 손 볼려고 할 경우 배는 고쳐지겠지만,그 배는 침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늘 노 대통령은 국민을 섬기겠다는 결의로 비장한 마음일 것이다. 그러한 초심으로 국정에 임한다면 임기 마지막에 권력비리 문제로 대국민 사과를 하거나,불투명하게 집행한 정책에 대해 통치권을 주장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노무현정부가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빈다. parkp@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