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음기는 상업적 가치가 전혀 없다." 축음기를 발명한 토머스 에디슨이 한 말이다. "컴퓨터 수요는 전세계적으로 다 합쳐봐야 5대에 불과할 것"이라고 전망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IBM 회장 토머스 왓슨이었다. 이처럼 기업인들의 예측은 때때로 빗나가곤 한다. 그만큼 우리들이 사는 세상의 미래를 예측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음반 비즈니스의 대부격이던 영국의 데카 레코딩사는 록그룹 비틀스의 데뷔 초창기,"기타나 치고 노래하는 그룹들의 인기는 곧 시들해질 것"이라며 이들의 녹음을 거절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업인들의 전망이 모두 틀리는 것은 아니다. 이름 없는 현장의 중소기업인들이 유명한 경제학자나 경제연구소들보다 실물경기를 더 정확히 예측하고 대안을 내놓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국에 외환위기가 닥치기 전 많은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사업하기가 너무 어렵다. 이대로 가다간 경제가 큰일 난다"며 걱정하곤 했다. 당시엔 각종 경제지표가 결코 나쁘지 않았다. 어느 정부기관이나 경제연구소들도 이른바 '펀더멘털'을 믿고 외환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도 중소기업인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서울 성수동에서 30년 동안 인쇄업을 해온 한 할아버지 기업인은 "나라가 망하지 않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며 경제위기가 닥칠 것을 장담하기도 했다. 필자는 이 얘기를 들을 당시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인가 하면서 흘려버렸지만 외환위기가 터진 다음에야 그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30년 동안 운반기계를 만들어온 남동공단의 한 중소기업인이나 25년 동안 플라스틱 용기를 만들어온 서울 종로의 한 경영자도 비슷한 경고를 여러 차례 했었다. 중소기업인들은 경제분야에 관해 체계적인 학식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기업 현장에서 터득한 '동물적 감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마치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을 앞두고 개미나 새,그리고 물고기들이 본능적으로 이상상황을 감지하고 특이한 행동을 하는 것처럼.아니면 노련한 자동차수리 전문가가 차에서 나는 소리만으로 어디가 고장났는지 단번에 알아내는 것과 흡사하다고 할까.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중소·벤처기업 정책에 대한 개편논의가 무성하다. 노동문제를 비롯 자금 신용보증제도부터 주5일 근무제, 벤처정책의 기본틀에 이르기까지 중소기업과 직·간접으로 관련된 대부분의 정책에 손을 댈 모양이다. 이들 개편작업을 중소기업인들은 숨죽이며 바라보고 있다. 정책이 잘못되면 살얼음판 위를 걷듯 경영하는 중소기업들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발표된 정책 중 상당수는 중소기업인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하지만 호응을 얻지 못하는 것도 있다. 개편방향을 제대로 잡기 위해선 수십년간 제조업을 해온 기업인들의 얘기를 귀담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원자재를 사고 혼신의 힘을 다해 제품을 생산해서 국내외 시장에 파는 사람들이다. 이 과정에서 고용의 상당부분을 책임지고 있으며 경제성장의 일익을 맡고 있다. 또 부도가 나면 자식들과 함께 길거리에 나앉을 수도 있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얘기를 듣는다고 최선의 정책을 찾는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엉뚱한 정책으로 실패를 자초하는 일만은 막을 수 있다. 그들 중에는 요즘 경제가 큰일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각종 거시경제지표가 괜찮은데도 이런 얘기를 하는 점이 왠지 마음에 걸린다.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