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성을 결여한 약속을 들어야 하는 것은 때로는 매우 곤혹스런 일이다. 어젯밤에 있었던 대통령 후보들의 경제분야 토론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후보들은 성장 전략에서부터 노동,농업,기업,벤처,지방경제 활성화 등 거의 전분야에 걸쳐 많은 말들을 했지만 목표를 달성할 정책수단을 제시하기 보다는 관념적인 구호에 그쳤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 후보들은 말 끝마다 서민과 근로자 보호를 내세웠지만 과연 무엇을 재원으로 어떤 성장의 과실로 서민과 근로자를 보호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지 못했다. 기업정책과 관련해서는 위험스런 주장까지 없지 않았다. 대통령 후보 토론회가 반기업 정서를 확대 재생산시키는 통로로 기능하는 이런 선거운동이 장차 어떤 부작용을 초래할지를 생각하면 우려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농업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후보들은 시장개방에 따른 특단의 농업지원만을 거론할 뿐 농업 경쟁력을 제고할 구조조정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 모 후보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을 거부하자는 주장까지 내놓는가 하면 또다른 후보는 개방에 따른 농업피해를 기업들이 보상해야한다는 듯이 언급하는등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 후보들의 토론이라고는 불 수 없는 대목조차 적지 않았다. 노동시장 구조개선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걱정스러운 주장들이 많았다. 국제적으로도 한국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악명이 높은 현실이지만 파견 근로제나 고용형태의 다양성등 시급한 개혁과제들에 대해 모든 후보들이 부정적인 입장으로 일관했다. 한표가 아쉬운 선거철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같은 후보들의 인기영합적 발언은 장차 노동부문 구조개혁을 어렵게 하는 자승자박의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지 우려된다. 다만 어제 토론의 긍정적인 측면이라면 유력한 세후보들 간에 그나마 정책의 차이가 어느 정도 드러났다는 점이다. 부유세를 둘러싼 쟁점이나 김대중 정부의 빅딜 문제 등에 대한 토론들은 후보들 간의 철학 차이를 분명히 드러냈고 행정수도 이전 문제에 대한 토론도 유권자들의 이해를 돕는데 적지않은 효과가 있었다고 본다. 방송토론이 갖는 여러가지 제한을 감안한다면 이 정도에라도 만족해야 할지 모르지만 역시 전체적으로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는 토론회였다. 시장경제 원리를 충분히 이해하며 국가의 생존발전을 위해 국민들에게 절제와 협력을 요구할 수 있는 그런 대통령후보는 과연 불가능한 것인가하는 질문이 이번에도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