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들이 한우물을 파면서 평생을 직장에서 보낼 수 있는 사회.' 이공계 출신들이 희망하는 사회의 모습은 바로 이것이다. 기술직, 연구직은 천직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기가 만만치 않은게 한국의 현실이다. 이공계 출신들이 받는 불이익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취업부터 만만치 않다. 어렵게 사회에 진출하더라도 급여 수당 승진 보직 등에서 찬밥 대접을 받기 일쑤다. 기업에서 연구원으로 평생을 몸담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이공계 출신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도 감당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엔지니어가 평생할 만한 직업이 되지 않고는 이공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엔지니어가 우대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과제를 제시한다. ◆ 전문가형 엔지니어를 키우자 =대부분 제조업체의 40대 엔지니어는 관리자 업무를 맡는다. 이로 인해 기술을 축적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국내 자동차회사의 한 상무는 "입사 10년 정도된 과장급 엔지니어가 실무에 밝은 전문가"라며 "부장급이상으로 승진하면 현장에서 자연히 멀어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정년 후까지도 현장에서 뛸 수 있는 선진국 제조업체의 경우와는 대조적이다. 한국에서도 엔지니어들이 전문가형과 관리자형으로 구분돼 경력을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엔지니어의 적성과 희망, 능력 등에 따른 인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로 갈지, 아니면 관리자로 갈지는 과장급을 전후해서 결정하는게 바람직하다는게 현장 엔지니어들의 주문이다. 엔지니어들은 전문가형으로 결정됐을 경우에도 과장 첫 호봉까지는 관리자형과 동일하게 대우하는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그후 전문 분야에 걸맞는 직무를 부여한 뒤 실적에 따라 평가, 보상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엔지니어들도 과장ㆍ부장 대신 선임연구원 책임연구원 연구위원 등으로 승진시킬 필요가 있다. ◆ 엔지니어들 능력을 키워 주자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엔지니어를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업이 드물다. 그나마 특정 직무를 맡기기 위해 사내외 교육을 시키거나 생산성 또는 품질, 경영혁신 등 전사적인 필요에 의해 운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할 교육에 치중되는 경우도 많다. 이로 인해 공장에서 근무하는 대다수 엔지니어들이 자기계발에 엄두조차 못내고 있다. 유럽과 일본에서는 연구 위주의 학위과정과 논문박사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정부와 학계도 이젠 '산업 석.박사 과정'을 개설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이 과정은 일정기간 기업체에서 일한 엔지니어가 산업현장의 문제를 대학에서 심층적으로 연구한 뒤 그 결과를 논문으로 제출, 학위를 딸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한국공학한림원은 이 제도를 활용, △현실 적응 능력을 갖춘 고급 엔지니어 양성 △산.학 협동 활성화 △이공계 대학 연구의 실용성 강화 등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기업체에서도 기여도에 따라 우수한 엔지니어에게 MBA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한다. 직위와 경력에 맞는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 시행할 필요가 있다. 회사가 필요로 하는 기술 개발이나 수익성 제고에 기여하는 정도에 따라 자격증을 등급화, 승진 과정 등에서 혜택을 줄 수도 있다. ◆ 인센티브를 확대 강화하자 =기능직 사원들은 잔업을 할 경우 수당을 받지만 엔지니어들은 관리자라는 이유로 시간외 수당을 받지 못한다. 품질이나 안전, 공해문제 등이 발생할 경우 문책을 당하기 일쑤다. 엔지니어의 긍지를 살려주기 위해선 현실적이고 실질직인 혜택이 돌아가게 해야 한다. 엔지니어가 직무중 개발한 지적 재산권에 대한 보상도 강화해야 한다. 정년을 늘려 주고 퇴직할 경우에도 다른 직장을 알선해줄 필요가 있다. 연구수당이나 공장근무수당, 성과급 등으로 받는 금액에 대해 세제 혜택을 주고 장기 근속한 엔지니어에 대해 공무원 수준의 연금을 주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엔지니어 등 과학기술인의 복리 증진을 위해 '과학기술인 공제회'를 설립하는 것도 한가지 방안이다. ◆ 근무 의욕을 높여주자 =젊은 엔지니어일수록 공장 근무를 회피하고 있다. 서울에 있는 본사에서 엔지니어들이 일할 수 있는 직무가 충분하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공장에서 일정기간 일하면 본사 등에 배치되도록 순환근무 기회를 줘야 한다. 수도권에 연구소를 설립한 뒤 엔지니어를 이곳에서 근무시킬 필요가 있다. 공장 근무 엔지니어에게 사택을 제공하고 평생 교육비를 지원하는 것도 불만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의 하나다. 특별취재팀 strong-korea@hankyung.com [ 협찬 : 한국산업기술재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