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부터 12일까지 사흘 간 북한 온정리 금강산여관에서 열린 '금강산 관광 활성화를 위한 제2차 당국간 회담'은 남북 양측이 원칙적 입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버텨 결국 아무런 가시적 합의도 내놓지 못한 채 종료됐다. 0...남북은 11일 오전 열린 전체회의 기조발언에서부터 핵심쟁점인 '금강산 관광사업의 당국 차원 보장'을 둘러싸고 팽팽한 입장대립을 보였다. 북측은 육로관광 개시와 관광특구 지정에 모두 응할 테니 남측 정부가 금강산 관광사업 전체에 대한 '보장'을 해 줄 것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이같은 주장의 이면에는 약속했던 9억4000만 달러의 관광대가 가운데 아직 5억6000만 달러를 지급하지 못하고 있는 현대측만을 믿고 관광사업을 확대할 수는 없는 만큼 정부가 사실상의 지불보증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북측의 계산이 깔려 있다. 반면 남측은 이를 결코 수용할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견지했다. 한 회담 관계자는 "금강산 관광이 남북관계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사업인 것은 사실이지만 민간기업의 일에 정부가 나서 빚 보증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양측은 11일 교환한 합의서 초안을 토대로 12일에도 실무접촉과 수석대표접촉을 잇따라 가지며 육로관광의 시기와 절차 및 관광특구 지정의 제도적 뒷받침에 대한 세부 사항에 상당한 의견접근을 이뤘지만 결국 '당국 차원의 보장'이라는 장애를 넘지 못했다. 0...회담 사흘째인 12일 오전 남북 양측은 9시로 예정됐던 전체회의를 취소하고 9시5분부터 곧 바로 수석대표접촉에 들어갔다. 15분만에 수석대표 접촉이 끝나고 9시47분부터 11시5분까지 다시 실무대표접촉이 이어졌다. 한 시간여 동안 내부 입장조율을 거쳐 양측은 오전 11시로 예정됐던 오찬을 미룬 채 12시5분부터 다시 실무접촉과 수석대표접촉을 잇따라 가졌다. 오후 1시30분 김택룡 북측 수석대표는 회담장을 나서면서 회담 경과를 묻는 남측 기자들에게 "당신네 단장한테 가서 알아 보라"고 퉁명스럽게 쏘아붙이며 돌아서 주변을 긴장시켰다. 11일 밤부터 금강산 지역에 내린 폭우로 이날 오전 9시경부터 회담장에 설치된 남북 직통전화와 국제전화 회선이 모두 불통됐다. 이 때문에 남측 대표단은 서울에 상황보고와 훈령요청을 하지 못해 출발할 때 받아온 훈령의 범위 내에서 회담 전략을 세워나갔다. 0...오후 2시15분 양측 대표단은 금강산여관 2층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함께 하며 합의문안을 놓고 조율을 계속했다. 회담장 주변에선 남북이 사실상 합의에 도달하고 있다는 긍정적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후 5시30분 수석대표가 만나 마지막 담판을 벌이면서 다시 분위기가 역전되기 시작했다. 북측 대표단이 당초 수용키로 했던 합의문안에 대해 평양에서 부정적 입장을 보여 회담이 원점으로 돌아가게 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협상이 길어지면서 오후 2시30분 대표단이 타고 속초로 돌아가기로 했던 현대설봉호의 출항은 계속 연기됐다. 오후 5시20분 경에는 13일부터 시작될 남북 이산가족 상봉에 참석할 북측 이산가족 100명이 4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금강산여관에 도착했으나 회담이 끝나지 않아 계속 버스에서 대기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0...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결국 오후 6시17분 북측 김택룡 수석대표가 남측 대표단 상황실 앞으로 조 수석대표를 찾아와 "이산가족들이 기다리고 있고 더 이상 합의가 안되니 회담은 그만하고 철수하자"고 '통보'했다. 김 수석대표가 돌아간 뒤 북측 일부 수행원들은 "철수하라는 데 뭐 하는 거야. 빨리 짐을 싸라"고 재촉하는가 하면 "우리가 다 받아주겠다는데 왜 버티느냐"며 남측 대표단을 비난하기도 했다. 북측의 통보를 받은 남측 대표단은 긴급 대책회의에 돌입했다. 약 1시간의 논의끝에 조명균 수석대표는 "합의문을 채택하기 위해 원칙까지 무너뜨릴 수는 없다"며 철수 방침을 최종 결정했다. 조 수석대표는 이같은 입장을 북측에도 통보하고 7시12분 기자실을 찾아와 "양측 의견차이를 좁히지 못해 합의문을 채택하지 못하게 됐다"고 짤막하게 회담 종료를 선언했다. 0...남북이 끝까지 줄다리기를 벌인 이유는 합의문에 들어가는 두 글자 때문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북측은 관광특구 지정에 대해 "제반 조건이 갖춰짐에 따라 관광특구를 지정한다"는 표현을 고집한 반면 남측은 '조건'이라는 표현에 동의할 수 없다며 '여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자고 맞섰다. '당국 차원의 보장'이라는 요구조건을 받아내는 데 실패한 북측이 '조건'이라는 표현을 근거로 향후 남북 협상 과정에서 새로운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 때문. 0...장전항 출항을 앞두고 남북은 출항 허가와 승선 시간을 놓고 마지막 신경전을 벌였다. 북측은 세관원을 모두 철수시킨 채 저녁 8시30분께 장전항에 도착한 남측대표단에 3시간 가까이 선박 출항 허가를 내주지 않아 대표단 관계자들과 입씨름을 벌이기도 했다. 대표단은 결국 밤 11시가 넘어서야 출항 수속을 밟을 수 있었고 장전항을 떠난 현대 설봉호는 도착 예정일을 하루 넘긴 13일 새벽 6시에야 속초항에 도착했다. 설봉호는 이날 오전 금강산에서 열릴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참가할 남측 가족 및 지원인력 등 586명을 태우고 이날 오전 11시 장전항을 향해 출발한다. (금강산=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