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은행장과 은행 임원들에 대한 예금보험공사의 소송 예고로 금융계가 또다시 술렁이고 있다. "향후 금융회사에 대규모 공적자금을 또다시 투입해야 하는 불상사를 막기위한 일벌백계의 고육책"이라는게 예보측 설명이지만 해당 은행들은 물론 금융계 전반이 느끼는 충격파는 간단치 않다. 외환위기 이전까지 금융계를 옥죄었던 '지시금융' 내지 '관치금융'의 관행에 눈감은채 일선 책임자들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이 합당한 것이냐 하는 논란이 우선 제기되고 있다. 예보의 이같은 움직임은 요즘 가뜩이나 위축돼 있는 기업금융시장을 더욱 찬바람 속으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 소송 배경과 대상자 예보는 소송 대상자들의 재산이 기업주처럼 많지도 않고 일부는 가압류나 가처분 이전에 처분했을 가능성도 있어 공자금 회수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소송을 강행키로 한 것은 부실기업에 대한 대출 책임을 끝까지 추궁해 같은 일의 반복을 철저하게 막겠다는 취지라는 설명이다. 예보 관계자는 "전직 은행장과 여신담당 임원은 물론 귀책사유가 명백한 직원까지 포함해 1백명 이상이 책임을 추궁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고 책임자인 전직 은행장들 대부분이 포함되며 여신담당 임원들도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보가 집중 조사를 벌인 기간이 1995∼97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 은행에서 중책을 맡았던 임원들은 거의 대부분 소송대상에 포함될 것이 확실시된다. 예보는 현재 경기 대동 등 5개 퇴출은행에 인수된 제주은행의 책임자 47명에 대한 소송을 진행중이지만 현재 영업중인 은행에 대한 소송은 이번이 처음이다. ◆ 우려되는 파장 금융계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은행들의 기업여신 기피현상이다. 소신껏 여신을 하고도 어쩔수 없이 손실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상황이라면 일단 리스크가 있는 기업에 대한 대출은 무조건 피하고 보자는 보신주의가 판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부 은행에서는 "기업여신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일단 재산을 부인 앞으로 옮겨야 한다"는 자조적인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소송을 당하는 당사자들은 이미 금감위 등으로부터 문책을 받아 취업길이 막힌 상태에서 있는 재산마저 모두 날릴 수밖에 없는 극한 상황으로 내몰릴 처지다. 일각에서는 과거 은행의 대출이 정부의 정책을 지지하는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은행들로 하여금 부실기업에 대출토록 한 당시 정책당국자들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확산되는 소송증후군 '금융회사의 책임경영체제 확립'이라는 목표로 진행되는 예보의 소송은 금융권 외에 부실기업주와 회계법인 등 다양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예보는 현재 13개 부실기업의 기업주와 임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중이며 조사가 마무리되는대로 곧장 소송에 들어갈 계획이다. 특히 코 앞으로 다가온 대우그룹 관련자들에 대한 소송이 관심이 되고 있다. 회계법인에 대한 소송도 불가피한 방향으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회계법인들도 단지 시간의 문제일 것으로 보고 있지만 소송액수가 회계법인의 유지를 가능케 할 수준인지 관심이 돼버린 상황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공적자금이 정치권의 주요 이슈가 된 상황에서 예보가 무리하게 소송전선을 확대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