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보건원이 천연두와 보툴리누스 독소증을 4군 법정전염병에 포함시켰다고 한다. 월드컵대회와 아시안게임 등 국제행사를 앞두고 마련한 생물테러 대비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1백만명 분의 천연두 백신도 준비한다는 소식이다. 천연두(두창·마마)의 역사는 길다. 기원전 1160년께 이집트 파라오 람세스 5세가 천연두로 사망한 것이 첫사례(세계보건기구ㆍWHO)로 기록돼 있지만 그보다 훨씬 전에도 존재했다는 것이 통설이다. 영국의 에드워드 제너(1749∼1823)가 1796년 우두접종법을 찾기 전까지 이 병의 치사율은 심한 경우 90%에 달했고 살아도 실명 곰보 등 심한 후유증을 남겼다. 신대륙 발견 뒤 유럽인들로부터 퍼진 천연두 바이러스로 인해 1518~31년 아메리카 원주민 3분의1이 몰살됐다고 하거니와 19세기 초까지 영국에서도 매년 4만5천명이 이 병으로 죽었다. 국내의 경우 지석영 선생(1855∼1935)이 1879년 우두접종을 실시하기 시작한 뒤에도 계속 발생, 1950년대까지 뇌염과 함께 가장 무서운 병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59년을 끝으로 새로운 환자가 보고되지 않은 데다 WHO가 80년 지구상에서 박멸됐다고 선언함으로써 예방접종 대상에서 제외됐고 93년 전염병 목록에서 빠졌다. 이처럼 완전히 괴멸됐다던 천연두가 다시 위협적인 존재로 떠오른 건 지난해 9ㆍ11테러에 이은 미국내 탄저병 소동 이후다. 천연두와 탄저병,에볼라 바이러스 등이 생물테러용으로 사용될 경우 핵폭탄의 10배이상 파괴력을 가질 수 있다는 발표가 나오면서 미국 러시아 영국 독일 프랑스 등 각국에서 천연두의 법정전염병 지정 및 백신 확보에 나섰기 때문이다. 전쟁보다 무서운 게 전염병이라고 한다. 돌림병이 전쟁의 비극을 극대화시킨다는 것이다. 각국이 천연두 백신 확보에 열을 올리는데 대해 일부에선 백신 자체가 천연두 바이러스의 사촌격인 만큼 악용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라지만 인간의 노력으로 완전퇴치된 유일한 질병이라던 천연두의 재부상을 대하는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