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기업 CEO(최고 경영자)를 만나 기업을 경영하는데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이 분은 망설이지 않고 대뜸 불확실성이라고 말했다. 기업환경이 불확실할 때는 무엇을 해야할지 판단이 안 서고,결국 어떤 결정도 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이 분은 특히 정부의 경제정책이 일관성을 잃거나 방향을 잡지 못할 때 기업은 더 어렵다고 했다. 오히려 기업에 불리한 정책일지라도 예측 가능할 경우에는 얼마든지 대비할 수 있고,최고경영자로서의 리더십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유능한 최고경영자의 가장 큰 덕목이 빠르고 정확한 의사결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일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성격이나 인품 성향 사고방식 등을 이미 알고 있을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이 별로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 사람이 과격한 행동을 하더라도 그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거나 그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을 때는 긴장하고 조심하게 된다. 그 사람을 알기 위해 시간과 정력을 소비하는 등 상당한 코스트(일종의 거래비용)가 들어간다. 따라서 사람이나 정책이나 예측 가능한 게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길이다. 이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돌풍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과 재계 등에서 불안한 시선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불안한 것은 아마 노 후보의 생각을 잘 알지 못해 예측이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또 과거 발언이 이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점도 불안감을 주는 하나의 요인이다. 여기서 소위 '색깔론'을 얘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요즘 정치적 공방을 벌이는 '색깔론'은 말 그대로 '정치적 공방'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대선 후보 모두가 정치체제에서는 자유민주주의를,경제체제에서는 시장경제를 옹호하고 있어 좌파냐 우파냐 하는 이념적 차별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또 이념적 차별성이란 것이 글로벌화된 세계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 경제전쟁의 시대에 있어 이데올로기란 결국 '국가경쟁력'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진보적인 민주당과 보수적인 공화당의 경제정책은 정강정책상 차이가 있을 뿐 실제 집행과정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민주당원인 클린턴이 1992년 대통령으로 선출됐을 때 내세웠던 슬로건은 '이코노미 퍼스트(Economy First·경제제일주의)''리빌딩 아메리카(Rebuilding America·미국재건)'였다. 당시 클린턴은 미국이 일본에 밀려 2등 국가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속에 대단히 공화당적인 정책으로 일관했다.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살리기 위해 발벗고 나섰고,대기업 CEO들을 초청해 백악관에서 토론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미국이 오늘날 세계 1등 국가로서의 지위를 되찾는데 이념은 결코 작용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소모적인 이념논쟁보다는 어떻게 국가경쟁력을 확보하느냐는 정책대결로 대선운동의 초점이 빨리 이동하길 바란다. 단순히 '기업을 사랑한다'는 추상적인 선언에서 벗어나 '기업을 사랑하기 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놓고 논쟁이 붙는 모습을 보고 싶다. 특히 노 후보의 경우 과거와 현재의 입장에 차이가 있다면 과거에 대한 확실한 해명과 함께 선명한 입장을 재천명해야 한다. '과거와 생각이 달라졌다'는 상황논리만으로는 부족하다. 미국이나 재계를 의식해서가 아니라 여론조사 1위인 대선 후보의 예측 가능성이 낮다면 사회 전체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cws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