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오후 6시 서울 조선호텔.새로 제일은행장으로 취임한 로버트 코헨 행장과 중도사퇴를 한 윌프레드 호리에 전 행장의 이·취임 리셉션이 열렸다. 비록 새 행장 취임 기념을 겸하긴 했지만 떠나는 행장을 위한 자리를 거창하게 마련한 것은 외국기업 문화의 특성이라 하더라도 다소 놀랄 만한 일이었다. 호리에 전 행장은 3년 임기중 겨우 절반만 채우고 중도하차한 케이스란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하이닉스반도체 등 대기업에 대한 여신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노동조합과의 관계 악화 등으로 대주주와 갈등을 빚은 것이 호리에 전 행장의 중도하차 배경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만큼 호리에 전행장을 위한 이임 리셉션은 국내 금융계 풍토에선 보기 드문 행사였다. "임기를 못 마치고 떠나게 돼 아쉽지 않느냐"는 기자의 말에 호리에 전 행장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할 일을 다하고 떠나서 행복하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의례적 답변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공개적인 자리에서 행한 그의 발언은 진심에서 나온 얘기인 것 같았다. 실제로 호리에 전 행장은 시종 밝은 얼굴로 찾아온 국내외 금융계 인사들과 석별의 정을 나눴다. 그는 "한국의 첫 외국인 행장으로서 선진금융기법을 도입하는데 나름대로 공헌했다"고 말했다. 국내 은행장중에도 중도퇴진의 경우는 많았다. 그중엔 부정대출이나 청탁과 관련해 불명예스럽게 떠난 행장도 간혹 있긴 했다. 그러나 확실한 주인이 없는 은행을 맡다보니 뜻하지 않은 외풍으로 임기 중도에 옷을 벗은 행장이 적지 않았다. 그런 은행장들은 재임중의 업적과 성과와는 무관하게 쓸쓸히 이임식을 갖고 사라져 갔다. 항상 관심의 초점은 새로 행장이 돼오는 사람에게만 맞춰져 온게 우리의 현실이었다. 이날 행사에는 윤병철 우리금융지주회사 회장, 이덕훈 한빛은행장, 위성복 조흥은행장, 김승유 하나은행장, 이인호 신한은행장, 김경림 외환은행장 등이 참석했다. 낯설기만 한 이 자리를 찾은 이들 금융 CEO들은 내심 자신의 이임식 행사가 이렇게 치러졌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을 갖게 됐을지도 모른다. 김준현 금융부 기자 kim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