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자계증권사의 도전 ]

"증권시장이 좋으면 흑자를 내고 나빠지면 적자를 내는 이런 악순환을 끊어야 합니다. 그런 식으로 장사를 하려면 뭣하러 경영진에게 월급을 줍니까"

요즈음 잇따라 열리는 증권사 주총을 지켜보고 있는 금융감독원 당국자의 ''감상''이다.

지난 99회계연도에 2조3천7백억원이라는 기록적인 당기순이익을 올렸던 국내 증권업계는 2000회계연도에 2천7백53억원의 적자를 냈다.

이 와중에도 대부분의 외자계 증권사들은 흑자를 냈다.

이머징 창업투자에 부당지원한 2백80억원을 손실 처리한 리젠트를 제외하곤 굿모닝 서울 메리츠 일은 KGI 등은 전년보다 흑자폭이 줄어들긴 했지만 ''손해보는 장사''는 하지 않았다.

물론 이같은 양상을 놓고 외자계 증권사의 ''글로벌 스탠더드'' 경영을 거론하기에는 이르다.

외자계는 굿모닝을 제외하곤 대부분 중소 증권사들이어서 아직 ''메이저 플레이어''로 자리잡고 있지 못하다.

6개사의 약정고를 모두 더해야 업계 선두인 삼성과 비슷한 정도다.

◇ 현대 대우까지 넘어가면 =그렇지만 현재 미국 AIG그룹과 매각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현대증권과 조만간 ''주인 찾기''에 나설 대우증권이 외자계로 바뀌면 얘기가 달라진다.

시장점유율(약정고 기준) 5% 이상인 6대 증권사(삼성 현대 대신 LG 대우 굿모닝) 가운데 절반이 외자계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삼성증권 이남우 상무는 "대형증권사들이 갖고 있는 상품기획력 마케팅 브랜드 인지도 등 ''기본체력''에 외자계의 풍부한 투자여력이 가세할 경우 상당한 시너지를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기업금융 국제영업 자산관리 인수.합병(M&A) 등 부가가치가 높은 사업분야에 특화하면서 메릴린치나 골드만삭스처럼 투자은행(Investment Bank)으로의 변신을 시도할 경우 삼성 정도만 빼고 토종증권사들이 ''마이너''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업계전문가들은 내다본다.

메리츠증권의 황건호 사장도 "수익성이 좋은 도매금융분야는 자본 뿐만 아니라 전문인력 양성과 시스템 정비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한번 주도권을 놓치면 따라잡기 힘들다"고 말했다.

◇ 토종증권사들의 시름 =토종 증권사들은 ''변해야 산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운신의 폭이 좁은게 현실이다.

"요즘 대형 증권사들은 소액 개인투자자들에게 발목이 잡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잘게 쪼개진 자금을 수많은 계좌를 통해 유지하려면 막대한 전산투자와 함께 인력 및 점포관리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모증권 기획담당 상무)

제일은행 등이 비용절감을 위해 소액 예금에 계좌유지 수수료를 부과하는 사례에서도 나타났듯이 대형증권사들은 마냥 늘어만 가는 계좌수가 그다지 반갑지 않다는 얘기다.

''개미''로 통칭되는 개인투자자들의 거래비중이 유난히 높고 정부 또한 여러 부실기업의 처리과정에서 ''개미군단''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형 증권사들이 드러내 놓고 고객 차별화 전략을 구사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반면 외자계는 상대적으로 정부나 ''국민 정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한 외자계 증권사 사장은 "표나게 추진할 수는 없지만 고수익을 안겨다주는 상위 20%의 고객들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차별화 전략을 구사할 계획"이라며 "우리로서는 주주의 이익을 보존하고 건전한 재무구조를 유지하는게 최고의 경영목표"라고 말했다.

기획취재부 오춘호.조일훈.장경영 기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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