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회사채 인수거부 사태는 엄격히 따진다면 정책당국이 제일은행을 뉴브리지 캐피털에 매각할 당시부터 예견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당연한 얘기이겠지만 국내의 기업과 금융기관을 외국인에게 매각할 때는 외화유동성 확보뿐만 아니라 경영권 방어, 외국자본의 산업지배 방지, 정책협조 문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제일은행 매각은 정책당국의 외자선호정책에 따라 시간에 쫓겨 이루어진 측면이 강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어느 기관보다도 기업 가치를 올려 매각해 수익을 올리는 벌처펀드의 성격이 짙은 뉴브리지 캐피털의 생리상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회사채 인수를 거부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책당국이 강조하는 구조조정 문제도 그렇다.

물론 과도기적인 단계에서 공적자금이 투입되긴 했어도 구조조정의 궁극적 목적은 수익성 개선과 자율성 확보에 있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이번 조치에 대해 금융감독원이 ''제일은행이 반대의사를 고집할 경우 산업은행과 신용보증기금도 제일은행 주거래 기업의 회사채를 인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 것은 감독기관의 책임 회피이면서 구조조정 목적에 정면 배치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제일은행의 회사채 인수 거부로 시중자금난이 심화되면서 기업들이 연쇄도산할 경우 금융시장과 우리 경제의 안정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느냐는 점이다.

이 우문(愚問)은 선진국처럼 공공선(公共善)과 관련 기관간의 도덕적 설득(moral suasion)으로 풀어 나가는 것이 순리가 아닌가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정책당국과 감독기관이 보다 겸허한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못하면 ''관치금융''이란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제일은행도 이번 회사채 인수 거부가 개별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최선의 결정이라고 하더라도 국민경제 효율 차원에서는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한상춘 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