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새한그룹의 전격적인 워크아웃 신청은 국내외에 상당한 파문을 던졌다.

명색이 삼성에서 떨어져 나온 방계그룹인데다 30대의 젊은 경영자(이재관 전 부회장)가 공격적 경영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한은 지난 95년 삼성에서 분리된 이후 곧장 30대그룹에 진입키로 목표를 정하고 필름사업 확장에 6천억원이 넘는 자금을 쏟아부었다.

당시 필름사업이 상당한 수익을 내는 분야였기 때문에 새한의 투자가 시의적절해 보인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96년부터 필름 가격이 하락하고 경쟁사들이 대규모 증설에 나서면서 이 사업은 졸지에 ''애물단지''가 돼 버렸다.

특히 경쟁사인 코오롱이 두배 가량 증설한데다 효성 화승 고합 등도 잇따라 신규 진입하면서 엄청난 과당경쟁이 벌어졌다.

"우리가 생산을 늘리면 경쟁사들도 덩달아 나설 것이라는 계산을 하지 못했습니다. 게임으로 치면 상대를 생각하지 않았던 셈이지요"(새한 전직임원 P씨)

결국 새한은 작년에 필름사업을 도레이에 넘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확실하게 국내 1위를 지키고 있던 부직포 소재인 ''스판본드'' 사업마저 넘겨줌으로써 새한은 주력사업을 놓치고 말았다.

고합도 진출하는 사업마다 ''공급과잉''을 일으켜 스스로 수익구조를 훼손한 경우다.

고합은 원료에서 완제품까지 일괄 생산라인을 구축하기 위해 지난 91년부터 98년까지 대규모 증설에 나섰다.

그 결과 PTA-폴리에스터원사-필름-PSF-바틀용 폴리에스터칩으로 이어지는 라인업을 구축하긴 했지만 시장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고합이 제품군을 무차별적으로 확대하자 기존 업체들도 가격 인하와 물량 공세로 맞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 버렸습니다.미국 젊은층에서 한때 유행했던 ''치킨게임''(상대방이 물러날 것을 기대하면서 마주보고 달리는 자동차게임)과 같은 양상이었지요"(A사 관계자)

고합은 최근 자구방안에 최신 설비로 ''알토란''처럼 키웠던 울산 제2공장을 매각 대상에 올림으로써 ''게임''의 패자가 되고 말았다.

나산 신원 진도 등 의류업체 역시 상대편을 생각하지 않은 경영전략으로 무너졌다.

상당수 의류회사들은 95년 반도체 경기가 잠깐 좋았을 때 경쟁적으로 새로운 브랜드를 내놓고 물류 건설사업등에 뛰어들었다.

지난 92년 논노의 도산에 대해 의류사업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금과옥조''처럼 회자되면서 ''사업다각화''가 대안으로 떠오르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들 회사의 신규사업은 뒤이어 터진 IMF사태로 제대로 힘 한번 써보지 못했다.

나산의 경우 전국 6개 지역에 4백50억원을 들여 새로운 ''개념''의 복합매장을 건설했지만 전대미문의 경제위기를 버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