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한국 패션은 꼭 10년전의 일본을 보는 듯 합니다"

최근 서울을 찾은 일본의 한 유명 디자이너가 명동거리를 둘러본후 한 말이다.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백화점의 구조,매장 구성,디스플레이 등 여러가지가 90년대 도쿄 하라주쿠(原宿)거리와 비슷하다는 주장이었다.

해외브랜드의 생산기지에 불과했던 70,80년대와는 달리 이제 우리나라 패션도 국제적인 수준으로 발돋움했다고 자부하는 터에 일본보다 10년이나 뒤졌다니….

그러나 국내 의류업계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하는 사람은 많다.

사실 두 나라의 패션비즈니스 흐름을 비교해보면 ''10년의 격차''는 의외로 눈에 많이 띈다.

일본의 청바지 시장은 급성장을 거듭하다 80년대 중반을 정점으로 그 열풍이 사그라들면서 90년대 초부터는 일반 브랜드에서도 진 아이템을 거의 취급하지 않게 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95년께 닉스 베이직 잠뱅이 등 진 전문 브랜드들이 연간 1천억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지금은 청바지 전문 브랜드를 찾아보기 힘들다.

백화점도 일본의 10년전과 비교된다.

최근 국내 대형 백화점들의 가장 큰 특징은 수입고가 브랜드로 매장을 채우는 고급화 경향과 다점포화를 꼽을 수 있다.

이는 80년대 후반 소고나 세이부 등 일본 대형 백화점과 다르지 않다.

최근 국내에서 신유통으로 주목받고 있는 SPA(제조와 소매를 겸영하는 대형 양판점)의 출현도 일본에서는 10년전에 이뤄졌다.

''유통 중심의 옷장사''를 표방하는 SPA는 국내에서는 아직 걸음마단계지만 일본에서는 지금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

뒤집어 보면 ''일본의 현재''는 ''한국 패션의 미래''다.

해외 유명 브랜드에 노른자위 매장을 내주면서 무분별한 다점포 경쟁을 벌이던 일본 백화점들 가운데 소고는 이미 도산했고 미쓰코시와 세이부도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반면 대표적인 SPA업체인 ''무지루시(無印)양품''은 도쿄에 있는 세이부 본점을 사들인다는 소식이다.

10여년전 모두 해외 유명상표를 들여오는데 눈 멀었을때 타야마 아쓰로라는 자국 디자이너 양성에 힘썼던 일본의 월드사는 그의 이름값 덕분에 지금 일본 최고의 의류업체로 부상했다.

10년 뒤 망할 것인가,성공할 것인가.

그 답은 가까운 일본에 있다.

s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