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증권관련 집단소송제도 도입을 추진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고 본다.

소액주주 권익보호나 기업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명분도 좋지만 자칫 소송사태가 일어나 기업활동이 위축되는 등 엄청난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유가로 인한 경기하강과 구조조정에 따른 신용경색이 겹쳐 그렇지 않아도 기업경영이 어려운 판에 이 제도를 도입하려는 것은 시기적으로도 적절하지 않다.

집단소송제는 기업경영자나 대주주의 부당행위로 피해를 본 사람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면 같은 사건으로 피해를 본 다른 이해당사자들도 모두 자동으로 보상받을 수 있게 되는 제도로서 원래는 제조물책임 환경오염방지 고용차별방지 등을 위해 시행됐다.

그리고 피해를 보상받는 주체가 기업이 아니라 이해당사자 집단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대표소송제와 다르다.

지난해말 입법을 시도하다 좌절된 집단소송제를 재경부와 법무부가 증권거래와 관련된 사안에 한해 또다시 도입하고자 하는 이유는 대주주의 전횡을 방지하는 동시에 허위·부실공시로 인해 피해를 입은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들이 보상을 받기 쉽게 하자는데 있다.

허술한 공시제도와 만연한 분식회계나 내부자거래 등 불투명한 국내증시 여건을 감안하면 도입취지는 어느정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관계당국이 한가지 반드시 명심해야 할 점은 집단소송제가 소액주주 권익보호나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집단소송이 남발돼 기업경영이 위축되고 기업가치가 떨어지면 결과적으로 소액주주 보호나 투명경영 모두 별 의미가 없게 되며 자칫 국내기업의 해외이전을 촉진해 고용불안만 악화시킬 수 있다.

정부당국은 소송대상을 증권거래법상 손해배상 청구대상중 집단적인 성격이 강한 사안으로 엄격히 제한하는 동시에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는 기업의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등 집단소송이 남용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 기업이 집단소송 대상이 됐다는 소문만 나도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한 우리현실에서 이같은 안전장치는 실제로 별 의미가 없다.

대주주의 전횡을 막기 위해 사외이사제를 시행하고 있고 적대적 인수·합병에 대한 규제도 대폭 완화할 예정이며 소액주주 보호 역시 대표소송이나 공시제도 강화 등 다른 방안이 얼마든지 있는데 엄청난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 굳이 집단소송제 도입을 강행하는 것은 실익이 없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