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진성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미지에게 말했다.

"베란다에 나갔다 10분 후에 들어올게.내가 돌아왔을 때 미지가 내 부탁대로 나체로 있으면 우리 사이에 아이를 갖자는 내 제의를 수락한 것으로 받아들일게.만일 나체가 아니면 내 제의를 거절한 것으로 알고 미지 앞에서 영원히 사라질 거야"

진성호는 지붕만 있는 베란다로 나갔다.

베란다에 서서 새벽 공기를 들이켠 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가로등이 비춰주는 거의 텅 빈 도심의 아스팔트 거리는 쓸쓸해 보였다.

그래서 정이 갔다.

도시의 거리에 정을 느껴본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고개를 젖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이 빠르게 움직이며 달을 가리고 있었다.

그는 어제부터 일어난 일을 되새겨보았다.

미국을 출발하기 전 한국에서 날아온,아내가 자동차에 치여 의식불명이 되었다는 소식…한국에 도착하여 아내가 사고 당일 불륜 행위를 저질렀었다는 사실을 안 일… 자신을 파멸시킬 수도 있는 대해실업의 주가조작 행위가 드러난 녹음 테이프가 현재 수사관의 수중에 있다는 소식…거기다가 이미지라는 여인을 만나 아이를 갖자고 제안한 일…그 많은 날 중 단 하루에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일이었다.

그는 문득 자신이 왜 오늘 이미지를 찾아와 그녀에게 그런 제의를 했을까 생각해보았다.

자신이 파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은 그를 외롭게 했고 그러한 외로움을 나누어 가지려고 이미지를 찾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아내의 불륜이 가져다준 배신감에 대한 복수로 이미지에게 그런 제의를 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지난 수년간 자식을 갖고 싶어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진성호는 입안에서 자신도 모르게 소리내어 중얼거렸다.

왜냐하면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 일은 거부를 쌓은 일이고 부를 전수할 자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이 부 때문에 부자간의 인연을 끊고 형제간 피를 흘리는 싸움을 벌이는 것으로 보아도 부는 어떤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음에 틀림없다고 진성호는 결론지었다.

부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일까?

진성호는 자신에게 질문했다.

문득 구약성서의 전도서 중 솔로몬왕이 한 말이 떠올랐다.

''연회는 웃음을 위해 있으며 포도주는 인생을 즐겁게는 해주나 돈은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이다''

솔로몬왕이 말했듯이 돈이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이라면 해답을 축적하는 한 인생살이 중 어떤 문제가 닥쳐와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듯했다.

그러나 세계의 유태인이 솔로몬왕의 지혜를 믿어 돈을 추구하는지 모르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그가 베란다로 나오기 전 이미지에게 말했듯이 돈은 무서운 파괴력을 가진 것이라는 믿음을 버릴 순 없었다.

문제는 돈이 돈을 가진 사람을 파괴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으려면 다른 사람을 돈의 힘으로 파괴하는 것이라고 진성호는 단정했다.

자신과 경쟁하려는 자,그리고 자신을 하찮게 여긴 자들을 파괴하고 그런 파괴 과정에서 더 큰 부가 오리라고 그는 믿었다.

진성호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구름에 가리워졌던 달이 환히 그 모습을 드러내주고 있었다.

그 달빛 아래서 그는 부를 남겨줄 아이를 이미지에게 잉태시키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