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간 국내은행이 다 ''국영은행(정부가 대주주)''이 되겠습니다"

17개 은행중 공적자금이 들어간 한빛 조흥 외환은행만 국영은행이 아니라 정부의 "협조요구" 탓에 다른 은행들까지 국영은행처럼 움직여야 한다는 은행원들의 푸념이다.

국영은행은 정부의 요구를 야멸차게 외면하지 못한다.

뉴브리지에 팔린 제일은행만 열외다.

한빛은행은 지난달 종금사 유동성 지원때 참여하지 않아 금융계에서 의아하게 봤다.

금융감독위원회는 "그동안 부담을 많이 줘 정부도 미안해서 빼줬다"고 밝혔다.

한빛은행은 제일은행의 대우 3개사 워크아웃 작업을 떠맡았고 영업정지된 영남종금에 2천억원을 이미 지원했던 것.

그 결과 BIS 비율이 8%선에서 왔다갔다 한다.

공적자금을 받은 국영은행은 물론 받지 않은 우량은행들도 정부의 협조요청에 쉽사리 굴복하는게 현실이다.

서울은행은 도이체방크 출신 강정원 행장이 버텨 종금사를 지원하라는 정부 압력을 견뎌냈다.

작년 7월 대우사태가 터지기 직전 당시 금감위 간부들은 투신사 사장들을 찾아다니느라 분주했다.

대우 부도를 막기 위해 대우의 담보CP(기업어음)를 인수시키기 위해서였다.

1년이 지난 현재 투신사들은 20%의 손해를 봤다.

한 투신사 사장은 "우리는 금감위 말을 듣다가 20% 손실을 봤지만 정부는 금융기관들의 불만과 시장의 불신이라는 쉽게 벗어던지기 어려운 짐을 지게 됐다"고 비꼬았다.

정부의 협조요구는 대개 전화로 이뤄진다.

사후책임 문제 탓이다.

오죽하면 투신사들은 금감위의 구두지시가 내려올 때마다 통화내용을 녹음하는게 습관이 됐다.

감독당국이 금융기관에 협조를 당부하는 것은 우리나라만 있는게 아니다.

선진국의 경우 정부가 은행들이 더 큰 손실을 피하는 방법을 논리적으로 설득, 스스로 협조여부를 결정케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김동진 체이스맨해튼 서울지점 대표는 "미국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도 은행장들에게 협조전화를 종종 걸지만 이를 관치라고 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와는 토양과 문화가 다른 셈이다.

관치금융이 유독 국내에서 문제된 것은 정부가 설득보다는 상황히 급박해진뒤 세련되지 못한 방법을 총동원해 밀어붙이는데 있다.

정부의 협조요구는 대체로 금융회사의 손실로 귀착된 선례가 많아 "관치=부실"이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곽창호 포스코경영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기업구조조정이 제대로 안된 상태에서 은행들이 덤터기를 쓴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감독인력의 전문화도 관치청산을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성남 금감원 검사총괄실장은 "영국 FSA(금융감독청)가 건전성 문제를 구두로 지적해도 해당 금융회사들이 두말없이 수용하는 것은 그만큼 문제를 정확히 짚어내 서로 신뢰가 쌓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에 대한 금융기관의 불신으로 선의의 정책마저 관치로 오해를 사는 경우도 적지 않은게 오늘의 현실이다.

오형규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