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은 수년전 일류기업론을 주창한 적이 있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라고도 불리는 이 주장의 요체는 "기업에 몸담고 있는 사람의 정신이 일류가 돼야 만드는 제품이 일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을 제외한 모든 것을 바꿔라"고 주문하는 등의 혁신론을 폈다.

그런 일류를 지향하는 기업에서 사모CB(전환사채) 문제가 불거졌다.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지난 97년 3월 삼성전자가 6백억원의 사모CB를 발행, 이중 4백50억원을 이재용씨가 매입토록 해 주식으로 전환해준 것은 다른 주주의 권리를 침해한 변칙증여"라며 사모CB 발행무효 소송을 냈다.

지난 23일 서울고법 민사1부는 "법절차에는 중대한 하자가 없지만 지배구조를 강화하기 위한 의도가 있고 사모CB를 발행할 당시의 주가 등과 비교할 때 저렴한 주식전환가격에 발행된 것으로 보인다"는 판결을 내렸다.

형식에는 하자가 없지만 내용에는 문제가 있다는 식의 법원 판결을 접하면서 기자의 뇌리에는 "삼성전자가 과연 진정한 일류를 지향하고 있는가"라는 강한 의문이 들었다.

기자가 아는 진정한 일류란 그런 것이 아니다.

법이란 최소한의 도덕률에 지나지 않는다.

최소한의 도덕에 머물지 않고 최대한의 도덕을 실천하려는 기업이야말로 진정한 일류일 것이다.

진정한 일류기업에 대해선 이건희 회장이 너무나 명백히 정의한 바 있다.

바로 "정신의 일류"다.

그것은 바로 이류와 삼류가 따르게 하는 창발(創發)정신이다.

그런 창발정신이야말로 이류와 삼류가 할 수 없는 일을 해내고 이류와 삼류를 따르게 하는 토대가 된다.

법원의 판결을 계기로 삼성전자는 진정한 일류가 되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삼성전자의 사모CB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땅에서 진정한 일류기업이 탄생하는 일을 보고자 하는 것이지 실정법의 위반여부를 둘러싼 자잘한 논쟁을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김홍열 증권1부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