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순 < 현민시스템 대표이사 1hs@hyunmin.co.kr >

몇 주전 한 여자고등학교로 강연을 하러 갔다.

"학교 붕괴"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강연 도중에도 강사의 말을 듣지 않고 딴전을 피우거나 조는 모습을 보면서 학교의 풍경이 많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직업과 진로라는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는데,어떤 학생이 옆자리로 "쪽지"를 날렸다.

"그런 쪽지도 사업으로 연결 지으면 좋은 소재가 될 거예요"

임기응변으로 이렇게 말했더니 웃음이 와- 터져 나온다.

나는 이야기를 발전시켰다.

"친구들과 주고 받았던 쪽지를 모아두세요.

좋은 "시대상"의 증거가 될 거예요.

우리는 2000년대초 이런 말을 주고 받았노라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한참 이야기하는데 아까 쪽지 보냈던 학생이 다시 쪽지를 접다가 슬며시 집어넣는 모습이 시야에 잡힌다.

강연하느라 학교 현장에 갔다가 나는 본말이 전도되는 일이 참 많구나,싶어서 씁쓸해졌다.

학교라는 곳이 또 교육이라는 것이,본래 지식을 전수받고 경험을 나누고 공동생활을 익히는 것인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더불어 살기 위해 지식과 경험및 도리를 배우고 가르치는 현장이 되어야 할 곳이 어느 사이 대치 관계로 변질된 감이 있다.

어디 학교뿐인가.

가정에서는 가정대로 부모와 자녀가, 사회에서는 기성세대와 신세대가, 각 세대 중에도 다시 세분화된 세대가 벼랑처럼 첨예한 차이를 드러낸다.

참 막막한 대치상태를 우리는 많이 마주하고 있다.

차이 자체가 없을 순 없지만 차이를 넘어 오가는 가교가 허술하거나 아예 없어 공감대를 가질 수 없는 게 문제 아닐까.

삶의 방향을 나눠야 할 사회와 학교 가정에서 본래의 것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컴퓨터도 그렇다.

애초 인간의 편리를 위해 도구로 등장한 컴퓨터에서 조금씩 본말이 뒤집히는 현상을 목도하곤 한다.

멀티미디어 쪽에서 좋은 툴들이 앞다퉈 나와 현란한 기술을 발휘할 수 있게 된 반면 문서 작성 등에 지나치게 꾸밈이 많은 예가 있다.

나는 도구들을 편리하게 사용하는 대신 비본질적인 것에 많은 시간과 노동력을 들이는 것이 사실 마땅치 않다.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의 질과 수준보다 시각효과를 높이는 데 치중하다 잃어버리는 게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 내가 선 이 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 흐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 함께 누리는 편리함과 따뜻함을 위해서도 그 눈은 계속 떠져 있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