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아르헨티나를 위시한 중남미 국가들이 금융위기 해소방안의 일환
으로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 도입을 주장해 왔다.

최근 들어서는 미국이 의회를 중심으로 이 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로
변하면서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이달에는 아르헨티나가 그동안 약 8개월에 걸쳐 자국의 통화를
달러화로 교체하는 연구보고서가 발표될 예정이어서 이 연구결과에 따라서는
급진전될 가능성도 있다.

일반적으로 달러라이제이션은 두가지 의미로 혼용되어 왔다.

하나는 국내 통화수요중 달러화 사용비중이 늘어나다가 종국에 가서는
해당국 통화를 대체하는 현상을 말한다.

과거 높은 물가에 시달려온 중남미 지역에서 달러화 대체현상이 광범위하게
나타났고 구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심화됐다.

다른 하나는 미국과 완전한 통화동맹을 결성하여 달러화를 법화
(legaltender)로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미 파마나에서는 이 제도가 시행되고 있으며 현재 아르헨티나도 이런
시각에서 검토되고 있다.

일단 어떤 국가가 달러라이제이션을 도입하면 사실상 독자적인 화폐발행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물가와 통화가치가 안정된다.

자연 투기적인 요인이 줄어들면서 경제 전반의 안정성과 대외신인도가
제고되는 긍정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반면 정치.경제적으로 미국에 예속되어 정체성(identity) 논란이 심화될 수
있다.

특히 독자적인 화폐발행이 불가능해 짐에 따라 일종의 조세수입으로 간주할
수 있는 화폐발행차익(seigniorage)이 소멸되면서 재정수지가 악화된다.

동시에 중앙은행의 최종대부자 기능이 상실됨에 따라 은행 스스로가 파산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

만약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하지 못해 은행이 파산되면 중앙은행에 의한
구제(bail-out)가 불가능해 지기 때문에 금융시스템이 불안해지는 부정적
효과도 있다.

현재 중남미 국가들은 달러화 사용이 보편화되어 있다.

아르헨티나는 모든 예금의 60%, 은행융자의 50%가 달러화로 거래되고 있다.

우루과이와 페루도 달러화 예금비중이 각각 80%, 70%에 달하고 있다.

정도 차이는 여타 중남미 국가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대부분 중남미 국가들의 외환보유액도 이미 통화량을 상회하고 있다.

지난해말 아르헨티나의 경우 외환보유액은 본원통화의 1백59%, 통화량(M1)의
1백19%에 달하고 있다.

이는 각국의 통화를 달러화로 바꾸더라도 큰 어려움이 없다는 의미이다.

물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중남미 국가를 대신해 최종대부자의 역할을 담당해야 할 미 연준리
(FRB)이 여전히 미온적이다.

중남미 국가들도 달러화를 법화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관련법 개정 등 많은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따라서 달러라이제이션은 지금 당장은 도입되기가 어려운 제도이다.

이달에 발표될 아르헨티나의 검토보고서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는 모르지만
법화를 달러화로 채택한다 하더라도 향후 2~3년 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아르헨티나가 달러라이제이션를 도입한다면 국제통화질서에는
커다란 변화가 예상된다.

이미 IMF의 부총재인 스탠리 피셔는 중남미 지역에서 어느 한 국가가
달러라이제이션를 채택하면 소수 통화에 대한 집중과 통화동맹의 확대현상
(fewer currencies and more currency unions)이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특히 중남미는 어느 지역보다도 다양한 지역블럭으로 얽혀 있는 데다 오는
2005년을 목표로 미주자유무역지대(FTAA)를 추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르헨티나가 달러라이제이션를 채택하면 미주지역에서는
단일통화 창설논의가 급진전될 가능성이 높다.

유럽에 이어 미주지역에서도 단일통화가 창설된다면 아시아 지역에서도
그동안 지역안정 차원에서 간헐적으로 논의돼온 아시아통화기금(AMF)와
아시아단일통화(Asian Single Currency) 창설논의가 구체화될 것으로 예상
된다.

대부분 아시아 국가들도 외환위기 과정에서 단일통화의 필요성을 느껴온
상태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이 발생된다면 국제통화질서는 달러화와 유로화, 엔화
(혹은 아시아단일통화)간의 3극 통화체제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국제통화질서도 이들 3극 통화간의 환율움직임에 상하 변동폭이 설정되는
목표환율대(target zone)가 도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최근에 중남미 지역에서 논의되고 있는 달러라이제이션은 어떻게 보면
또하나의 밀레니움 질서를 예고하는지 모른다.

국제금융시장에서 갈수록 달러라이제이션에 대해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는 것도 이런 연유 때문일 것이다.

한상춘 < 전문위원 scha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