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3월 초순께 프랑스 파리는 전세계 패션인들이 한자리에 모여들어
거리가 북적거린다.

올 가을 겨울 패션을 미리 선보이는 세계적 기성복 쇼인 프레타 포르테가
열리고 프리미에르 비종이라는 대규모 소재 전시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유럽인들 패션의 현재 모습과 내년을 위해 제안되는 패션
트렌드 정보를 얻기 위해 거리의 곳곳에서 쇼윈도를 기웃거리고 패션쇼장
이나 전시회장을 바쁜 걸음으로 오간다.

파리에는 패션의 본고장답게 유럽과 미국의 유명 디자이너들의 매장이 거의
다 밀집해 있다.

각기 독창적인 컨셉트를 가지고 있는 이들 매장은 직업을 떠나 누구에게나
좋은 구경거리이기도 하다.

지금 세계의 패션 마니아들의 관심은 화이트, 화이트의 물결!

거리의 윈도 어디나 순수한 화이트 컬러의 내추럴한 소재를 사용한 캐주얼
룩을 볼 수 있다.

파리의 패션거리는 크게 몽테뉴가 에티엔느 마르셀에서 레알까지의 거리,
그리고 생제르망 데프레, 생토노레 등 4개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이중 생토노레는 구식 취급을 받으며 그동안 패션 마니아들에게 잊혀졌던
거리다.

그런데 작년에 새로 오픈한 콜레트(collette)숍으로 인해 이 거리가 새로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금 가장 주목받고 있는 트렌드 컨셉트숍인 꼴레트는 생토노레 213에
위치하고 있으며 흰색 외관의 3층으로 구성됐다.

이곳이 인기있는 이유는 스타일과 디자인, 아트와 음식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번 시즌 콜레트는 1층의 잡화 코너를 온통 내추럴한 색상을 지닌
스포티한 운동화로 채워 넣었다.

그곳을 찾는 세계의 패션 마니아들도 이 아이템에 집중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중 최고 히트 아이템은 이탈리아 브랜드 프라다에서 만든 단순한 디자인
의 스포츠 운동화.

1천프랑스프랑 정도의 가격에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또하나의 패션 거리인 에티엔느 마르셀에서 가장 인기있는 매장은 가부키
(Kabuki)라는 패션멀티숍이다.

이번 시즌 가부키 매장의 윈도는 흰색 캐주얼 룩으로 온통 디스플레이됐고
큰 아웃포켓이 달린 재킷이나 셔츠모양의 재킷이 가장 인기있는 아이템이다.

이처럼 파리에서도 유행의 첨단을 걷는 점포들은 올 봄 한결같이 캐주얼
하고 스포티하면서도 내추럴한 상품들을 제안하고 있다.

색상은 한결같이 순수주의를 표방한 흰색과 깨끗한 이미지의 뉴트럴
(neutral) 컬러들을 주로 보여주고 있다.

또 소재는 대부분 면이나 마같은 천연소재에 여러가지의 첨단 테크놀로지를
통해 가공하거나 나일론과 같은 인조섬유를 믹스해 기능성을 부여했다.

이렇게 그들이 순수주의와 캐주얼한 것에 열광하는 이유는 아마도 유행
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되는 패션이 아닌, 진정으로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스타일을 원하는 마음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지금 유럽 패션인들은 새 천년을 맞이해 젠(Zen :선)이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그들이 지금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테마가 바로 젠, 즉 동양의 선 사상
이다.

정신적인 만족감을 추구한 결과물인 내추럴리즘이 젠으로 발전한 것이다.

젠을 추구하는 카페, 젠스타일의 점포등에 젊은이들이 몰린다.

동양의 차문화가 인기 트렌드로 부상해 동양식 찻집이 성업중이기도 하고
색상관련 전문서적에 한폭의 산수화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처럼 물질을 넘어선 정신세계가 이제 그들의 관심사가 된 것이다.

그들이 속속들이 알고 있는 서구 문명이 아닌 동양의 선 사상에 심취하여
만들어 내는 다음 시즌의 패션은 과연 어떤 것일까?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