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교 자본이여 돌아오라"

인도네시아에서 금융위기가 일파만파로 확산되던 작년 11월 무렵.

수하르토 당시 대통령은 이같은 내용의 호소문을 발표했다.

화교자본을 배척해왔던 말레이시아도 화교자본 유인책을 내놓기 바빴다.

화교들은 단순한 이민집단을 넘어서 실질적인 파워세력으로 군림하는
것이다.

화교자본이 유태계 자본과 어깨를 겨룰 유일한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현재 세계 화교수는 1백30여국에 5천5백만명 정도.

이 가운데 91%가 넘는 5천30만명이 아시아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국가별로는 대만 2천30만명, 인도네시아 7백20만명, 홍콩 6백60만명,
태국.말레이시아 각 5백80만명, 싱가포르 2백70만명, 필리핀 90만명, 베트남
70만명 등의 분포를 보이고 있다.

다음으로는 미주 3백40만명(6.3%), 유럽 및 오세아니아 각 60만명(1.1%씩),
아프리카 10만여명(0.2%) 등의 순이다.

이들이 소유하고 있는 자산은 유동자산만도 2조달러를 웃도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에선 전체 인구의 6%에 불과한 화교가 역내
자본의 70%이상을 주무르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상위 10대재벌을 화교계가 휩쓸고 있다.

2백대 기업의 70%도 화교계 차지다.

태국 역시 25대 재벌중 23개가 화교계 소유며 금융업은 80%를 화교가
장악하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전 제조업의 3분의 1을 화교가 쥐고 있다.

80년대 눈부셨던 동남아의 고속성장 뒤에 화교자본이 버티고 있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부동산 재벌인 홍콩의 리카싱(쳉콩그룹 등 소유), 인도네시아 소도노 사림
(사림그룹), 필리핀 탄유(호텔업) 등 화교계 경제거물들은 세계적인 거부
대열에도 당당히 상위랭킹을 차지한다.

화교 이주 역사는 14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편전쟁 이후에는 더욱 가속화됐다.

주로 가까운 동남아에 둥지를 튼 화교는 현지인들의 텃세에 시달리며
밑바닥 인생을 시작한다.

음식점 이발소 포목집 등이 그들의 몫이었다.

모진 박해속에서도 화교는 강인한 생활력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부를
축적해나갔다.

화교들의 재물에 대한 집착은 남다른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이에 대한 일화도 수두룩하다.

임종을 앞둔 노인이 가까스로 손가락 두개를 펴보였는데 알고보니 방을
밝히던 호롱불 두개중 하나를 끄라는 얘기였다는 얘기는 화교들의 속성을
잘 드러내는 일화다.

긴밀한 가족간 유대를 굳혀온 점도 오늘의 성공에 일조를 했다.

화교는 기업경영도 철저하게 가족중심으로 일관한다.

가족중심의 사회조직과 지연을 중심으로 한 신디케이트를 구성해 사업영역을
넓혀 나가는게 또다른 특징이다.

집단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해 투자나 자금조달, 정보수집에 협력하는 것이다.

91년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제의해 창설된 화상네트워크가 대표적이다.

세계 지역별 화교협회도 수시로 모임을 갖는다.

최근 동남아 화상들은 구미 호주 등 제3국으로 2차 이주한 지역에서 기존
동남아 화상들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유지, 사업을 확대재생산
하기도 한다.

95년엔 인터넷상에 세계 화교들간의 신속한 연락, 정보교환을 목적으로
하는 서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세계 화교 기업 1백5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결과 화교들은 자국내
사업의 50%이상, 해외 사업의 39% 정도를 화교들간 네트워크를 통해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같은 상부상조는 화교가 동남아 상권을 장악하고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데
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

물론 역으로 가는 곳마다 눈총을 받게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위기에 대비하는 현실주의도 돋보이는 면모다.

인도네시아가 국가부도에 직면했을 때 싱가포르나 홍콩 등으로 자금을
분산시켰던 화교들의 기동성과 영민함은 바로 이주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떻든 21세기에는 중화경제권이 막강한 체제를 구축할 것이라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 김혜수 기자 dearsoo@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11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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