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곤 < 한국지방행정연구원장 dalgon@plaza.snu.ac.kr >

지방선거가 낮은 투표율 속에서 마무리되었다.

95년 선거가 68.4%의 투표율을 기록한 것에 비하면 이번 투표율은 52.6%대로
61년 이후의 가장 낮은 투표율을 보였다.

투표율이 50% 초반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은 국민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를 드러내는 가장 확실한 지표다.

과거 정부의 출범에서부터 국민정부의 출범후인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정쟁에 대해서 국민의 상당수가 등을 돌리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경제위기로 인한 대량실업 및 사업부진 등과 같은 작금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정치에 대한 냉소를 보이고 있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정치불신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 분명하다.

특히 대도시권의 투표율이 40% 중반대를 보여준 것은 도시민의 상당수가
지방선거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다른 절실한 문제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현실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일부 지역에서는 당선자가 뻔히 내다보이는 한국적 지역주의의 병폐가
낮은 투표율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지역별 투표율을 기초로 볼때 앞으로 지방자치제의 앞날은 어두운 것이
사실이다.

많은 주민들이 정치일반에 대해 낮은 관심을 보이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지방선거에 대해서는 더욱 무관심한 실정이 되었다.

누굴 뽑으나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그간의 지방자치행정에 대해서도 그리 좋지않은 평가를 하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연유야 다양하지만 몇 지역을 빼고는 상당수의 단체장이 바뀌었다는 점도
이러한 주민 의식을 말해주는 것이다.

3년동안 추진된 자치행정의 성과에 대한 평가가 냉정하게 내려졌다고 볼
수도 있다.

이제 지방경영은 당면한 경제위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비전위주의 탁상행정에서 주민의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생활문제해결
행정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문제해결능력의 구비가 무엇보다도 요청되고 있다.

선거결과는 여서야동의 지역적 대결구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선거과정에서는 선거구내의 소지역적 갈등구조가 심화되고 있는
현상을 곳곳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

사실 지방정치는 지역주의에 근거하고 지방자치제는 전국적인 문제보다는
지역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공간으로서의 지역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지역주의는 지역적 갈등과 대립, 나아가 투쟁의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망국적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미 공간으로서의 고향이라는 지역을 아버지대에 떠난 주민들도 정서적
지역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도시 주민들조차도 지역적 연고에 따라 투표하고 있는 현실에서 당면한
국제적 개방문제를 어떻게 추진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앞이 깜깜하다.

진정한 통합과 대외개방의 바탕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지방선거의 지역적
연고주의는 이제 대대적인 시민운동에 의해 타파되어져야 할 것이다.

지역주의가 고착되는 것은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에 의존되고 중앙정치인이
지방선거를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는 디딤돌로 이용하는데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번에도 각 당은 이를 진정한 지방정치의 민주화와 지방자치행정의 발전을
통한 지역민주주의와 지역경제의 발전에 목적을 두었다기 보다는 중앙정치권
의 개편에 대한 여야간의 세력경합과 당내입지강화의 기회를 더 중시한
느낌도 지울 수 없다.

물론 정치가 경쟁의 장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현실정치의 요건들을 무시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지방정치와 자치행정의 관점에서는 아쉬움을 접을 수
없다.

이번 선거에서도 지방의 발전을 위한 정책의 제시와 대결이라는 선거의
모토와는 달리 인신공격, 흑색선전, 정서자극적인 선거전략이 목표를 대치
했다.

그것이 주효했다.

정책으로 내건 것도 심도있는 분석이나 전략적인 대응책이 아니고 인기에
부합하는 선거대책의 일환으로 사용된 지역도 다수 있었다.

후보자들이 진정으로 경제위기시대에 지방이 나아갈 바를 제대로 파악하여
종합적인 대책을 세울 준비가 부족한 것이 여실히 눈에 띄었다.

경제위기극복의 전략적 대결장이 돼야했던 지방정치의 장이 과거답습형
지역대결의 정치장이 된 점을 당선자들은 깊이 인식하고 지역이 어떻게
주민의 삶의 질과 지방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경영에 매진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4년뒤의 주민들은 더욱 냉정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