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이 몰려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이후 우리나라 신용도가 다소 회복되자 외국
자금이 증권시장에 봇물처럼 밀려들고 있다.

외국인 자금은 노/사/정 합의가 이뤄진 2월들어 급증, 지난 5일 현재까지
무려 2조3천9백49억원에 달하고 있다.

이에따라 상장사중 주택은행 등 30개사는 외국인보유 주식이 국내 최대
주주보유 주식보다 더 많아졌고 대우통신 등 27개사의 외국인주주는 단독
으로 5%이상을 취득, 주요주주로 떠올랐다.

주식시장도 외국인들의 사자주문에 따라 주가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외국인
장세로 변했다.

국내에 들어오는 외국인자금은 미국계의 투자펀드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아직까지는 단순투자가 주목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5일 현재까지 국내 기업의 지분을 5%이상 취득한 15개 투자기관을
보면 미국이 10개, 아일랜드 케이만군도 영국 스위스 홍콩이 각각 1개사
등으로 미국이 3분의 2를 차지했다.

유형별로는 동양에레베이터 주식을 매입한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 1개사만
이 기업체였으며 나머지는 모두 투자회사였다.

효성티앤씨 SKC 한국타이어 대우통신 등 4개사의 주식을 공동 매입한
미국의 아팔루사와 케이만군도의 팔로미노 인베스트먼트는 기업인수나
그린메일 경험이 없는 순수한 투자회사라고 국내 상임대리인인 김&장 법률
사무소는 밝혔다.

또 태영 서흥캅셀 웅진출판 쌍용정유 에스원등 5개사 주식을 5%이상 취득한
아일랜드의 제네시스에셋매니저사도 순수투자목적으로 국내 주식을
사들였다고 우방종합법무법인측은 소개했다.

이밖에 신풍제지와 조일알미늄 동양종금 주식을 5%이상 취득한 템플턴,
롯데칠성 태영 금강 주식을 취득한 오크마크 인터내셔널, LG증권 주식을
5.52% 매입한 캐피털그룹, SK텔레콤 LG화재 주식을 6.09% 취득한 TEI펀드
등도 개인 또는 기업으로부터 자금을 받아 운용하는 펀드들이었다.

특히 TEI펀드는 지난해 7월 LG화재 주식을 주당 평균 5만3천9백원에
22만3천주를 매수했다가 환율이 불안하자 10월에 1만5천6백원이나 낮은
주당 3만8천3백원에 모두 처분한 적이 있어 단기투자수익을 노리는
헤지펀드로 파악됐다.

윤현수 코미트 M&A사장은 "초기단계이기는 하지만 외국인들이 경영권을
인수하기 위해 주식을 매집하는 것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앞으로 적대적 인수합병(M&A)이 허용되면 사정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윤사장은 "시간이 지나 외국인 지분이 높아지면 적대적인 인수도 나올
가능성이 있다며 제도적인 보완과 경영권 방어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국내에 들어오고 있는 외국계자금 대부분이 M&A에 관한한 한발
앞선 미국계인 점을 특히 주목하고 있다.

지난 70년이후 많은 경험을 쌓은 미국의 금융기관들이 M&A를 가장, 그린메일
(경영권을 위협하면서 매입한 주식을 대주주들에게 비싼가격에 팔아 넘기는
행위)을 요구하거나 인수기업을 분할 매각하는 등 M&A 본질에서 벗어난
거래를 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보경 프론티어 M&A사장은 "세계적인 기술이나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는
회사, 계열사 주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지주회사, 시장 독점력을 갖고
있는 회사 등이 공격받을 가능성이 높다"며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인의 국내 진출은 국내 기업들이 경영을 투명하게 하는 순기능도 가져다
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국내 기업들이 편법으로 대주주 개인에게 자금을 유출하는 등 투명
하지 않은 거래를 할 경우 소송을 제기,강력한 견제세력으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현상은 이미 몇몇 기업에서 나타나고 있다.

최근 미국의 타이거펀드 오펜하이머글로벌펀드 등 4명의 외국인은
SK텔레콤에 사외이사를 선임하고 해외에 투자할때 주주동의를 받도록
주주제안권을 행사했다.

이들은 오는 3월 정기주주총회때 의결권을 같이 행사하겠다며 증권당국에
공동보유자로 신고,무언의 압력을 가하고 있다.

회사측은 경영기밀을 알기 위한 시도로 해석하고 있으나 소액주주의 권한
행사가 그만큼 강해졌다는 점에서 고무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동안 개인투자자는 물론 기관투자가들도 주주권을 행사하지 않았으나
이제 외국인들이 이들 국내 투자자를 대신해 주주권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
된다.

물론 국내 기업들에는 경영권방어와 주주관리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부담을
줄 것이다.

약간의 경영권 방어비용을 지불하더라도 투명한 기업풍토를 조성, 외국인들
의 신뢰를 회복하는게 더 중요하기 때문에 소액주주권한의 강화는 대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결국 국내에 들어오는 외국인들은 앞으로 주주권한을 강력하게 행사하고
일부는 경영권인수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충북대 송종준 교수는 "기업들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정관에 신주를
거래처에 배정할수 있다는 규정을 미리 넣어두는 등 상법과 거래법을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재미 한국인 M&A 전문가인 컨피던스인베스트먼트사의 폴 강 사장은 국내
기업들이 자금난도 함께 겪고 있는 점을 들어 "우호적인 외국기업의 자본을
유치, 회사를 합작형태로 바꾸는 것이 자금난해소와 경영권방어의 두가지
효과를 거둘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