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얼어붙어 기온마저 끌어내렸는가.

올 겨울은 따뜻할 것이라더니 12월 들자마자 강추위다.

이래저래 어깨가 더욱 움츠러들고 스산하기만하다.

한라중공업 등 대량해고가 이미 예고된 회사의 종업원이나, 대폭 정리될
것이라는 종금사직원이나, 아직 표면적으로는 그런 얘기들이 나오지 않은
다른 직장 근로자들이나, 기업인이나 경영자인들 다를게 무에 있을까.

내년을 어떻게 넘겨야 할지 걱정스럽고 우울하기는 따지고 보면 마찬가지다

정말 음산한 겨울의 문턱을 우리 모두 들어서고 있다.

내년 성장률을 2%로 낮추라는 IMF(국제통화기금), 그래서 실업자를 1백만명
이상으로 늘리라는 IMF에 대해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그래서 그런가.

IMF는 "I am F"라는 뜻이라는 신문만화도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고 정확하게 판단해야 한다.

오늘 이 지경이 된 것은 IMF때문이 아니고, 그들을 욕해야 할 이유도
없다는건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이 모양 이 꼴이 된 까닭 또한 간단하다.

"I am F"였기 때문이다.

"내탓이요 내탓이요 내탓이로소이다"라고 우리 모두 뼈저리게 반성해야
옳다.

부도덕과 무지로 이어져온 정권, 그래서 그 약점을 감추기라도 하려는
듯 해외여행자유치화, OECD 가입이다 하며 인기영합하는 정책으로 국민의
기대심리만 한껏 부풀리게 한 사람들에게 큰 책임이 있다는건 너무도 분명
하다.

그러나 그들만의 책임은 결코 아니다.

빚을 얻어 속빈 강정을 벌이기만한 기업인은 물론이고 가계나 근로자도
내몫 챙기기에만 급급하고 분수이상의 소비에 몰두하지 않았는지 모두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한다.

외상으로 검둥 황소를 잡아먹었다면 굶더라도 그 값을 치러야 하는 것은
순리다.

IMF라는 "점령군"을 맞아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일본을 점령한 맥아더사령부가 재벌을 해체하는 등 미국방식의 경제를
강요한 것처럼 IMF식 경제운용을 강요당하는 것은 이제 불가피하다.

감정적으로 정말 내키지 않는 일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평가는 달라질
수도 있다.

우선 부실금융기관 정리방식의 변화는 주목할 만 하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금융기관은 제쳐두더라도 웬만한 대기업이면
엄격한 의미에서 망한 적이 없다.

기업주나 경영자가 바뀔 뿐 회사는 다른 곳에 통폐합되더라도 살아남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망한 회사는 확실히 정리돼 청산되고 없어진다.

종전방식보다 그 충격이 훨씬 더할 것은 자명하다.

회사가 망하더라도 종업원이 모두 당장 실업자가 되는 일은 적어도 종전
까지는 없었으니까.

이런 사태가 빚어진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서구적인 경제논리로 본다면 종전까지의 미적지근한 방식의 부실
기업정리는 옳지 않다.

부실한 것과 부실한 것의 통합이 부실만 극대화할 뿐 문제를 해결한게
아니었다는 것은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도 여러차례 입증됐었다.

IMF관계자들은 모든 금융기관 예금에 대해 3년간 원리금전액을 보장키로한
정부조치에 대해서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정부의 예금원리금보장은 1백% 확실하고 절대로 변동이 없을게
분명하다.

그러나 망한 금융기관을 잘못 선택한 책임은 예금주 본인에게 있지 않느
냐는 IMF관계자들의 지적은 경제논리, 시장의 원칙에 비추어 타당하다고도
볼 수 있다.

"IMF신탁통치기간"중 이런 냉정한 논리는 거듭 강요될 것이 분명하다.

정말 내키지 않는 일일지 모르나 선진경제로 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할 점이 바로 이 점이기도 하다.

이제 경제는 법률과 경제논리에 따라 운영돼야 한다.

감상적인 온정주의나 집단행동으로 경제흐름을 바꿀 수 있었던 시대는
지나갔다는 점을 냉정하게 인정해야 한다.

앞으로 부실금융기관 정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말썽도 적잖게 빚어질
것이다.

살릴 것과 죽일 것을 분류하는 단계에서부터 그럴 것이다.

우선 생살부를 작성할 관계당국자의 잣대가 공정하고 투명해야 할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여기에 겹쳐 당사자들의 자세도 대승적이어야 한다.

50보를 도망친 자가 1백보를 도망친 자를 비웃을 수 없다는 얘기는 이번
경우에 걸맞지 않는다.

저거나 그거나 그게 그것 아니냐는 식으로 차별성을 부인하고 부실하기는
비슷비슷한데 왜 우리만 정리당하느냐고 집단행동을 벌인다면, 그 행위만으
로도 정리당해야 할 필요하고도 충분한 요건을 갖췄다고 판단하는게 현상황에
비추어 옳다.

정말 춥고 음산한 겨울이다.

그러나 절망은 금물이다.

추운 겨울이야말로 풍년을 예비하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상난동으로 웃자란 보리는 알맹이가 시원찮게 마련이다.

경제구조와 그 운영논리의 개혁, 토론만 하면 누구나 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던 그것을 자율로 못했기 때문에 이제 타율로 강요당하고
있고, 그래서 고통이 더 클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봄을 맞기 위해 반드시 겪어야 할 겨울이라고 할 수 있다.

추울수록 봄이 더 봄답게 느껴질 것 또한 분명하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3일자).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