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도 예산편성 방향 등을 25일 집권여당인 신한국당과 협의한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예산시즌의 막이 올랐다.

내년 예산은 경기부진에 따른 불투명한 세입전망이 예상돼 정치권 뿐만
아니라 행정부에서도 예산확보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게다가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끼인 해이기 때문에 대선주자들이 자신들의
공약을 집행의지로 보여주기 위한 선심성 예산에 대한 우려도 높은게 사실
이다.

예산시즌에 때맞춰 한국재정학회는 이날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정부 이양기
의 재정운영'' 주제의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주제발표에 나선 오연천 서울대 행정대학원교수의 발표내용을 간추린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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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선거를 수개월 앞두고 정치적 경쟁이 가열되고 있는 상황에서 곧
예산국회가 개원될 예정이다.

이번 예산국회는 예전과 달리 주요 정당들이 각기 정책정당으로서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서뿐 아니라 지지기반 확충을 위해 각 정당의 정치적
목표에 부합하는 예산 확보 및 배분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이
분명하다.

때문에 예산과정에서 소위 정치성(또는 선심성)예산에 대한 논쟁이 가중될
여지가 높다.

특히 내년도 예산안은 현재의 세입전망과 열악한 경제여건에서 긴축예산
편성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점에서 예산안의 규모와 구조를 둘러싼 여야간
시각차이가 더욱 현저할 수 있다.

늘어날 파이는 적은 반면 정치적 경쟁기의 정치적 재정 수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국민경제의 경쟁력 회복"과 "예산을 통한 정치적
이익의 극대화"라는 대립되는 목표를 어떻게 균형있게 배합하느냐는 곧
정치권의 능력을 가늠해주는 시금석이 될 수 있다.

<> 정치순환과 재정순환의 괴리에 따른 문제점과 대응방안 =널리 알려져
있듯이 예산주기는 회계연도를 기준으로 전년도에 차기연도 예산안에 대한
행정부내의 요구→편성, 그리고 입법부의 심의→확정 단계를 거쳐 당해
연도에 집행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따라서 예산주기는 기본적으로 1년이라는 회계연도를 기준으로 3년을 한
단위(전년도 편성 확정→당해연도 집행→차기연도 결산 및 회계감사)로 해
반복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반복적으로 순환하고 있는 예산주기와는 달리 예산결정의 핵심주체가 되는
대통령 국회의원 등은 선거과정을 통해 순환이 이뤄지게 된다.

따라서 정치순환은 4년 또는 5년으로 설정되어 있는 선거주기를 기준으로
전개되면서 재정순환과정에 새로운 정책 선택의 결과를 투입하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대통령중심제의 권력구조하에서 재정정책의 선택이나
예산결정과정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대통령의 선거공약과 재임
기간동안의 대통령 자신의 정책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는 5년 단임의 대통령 임기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정권)이양기를 전후해 정치권 순환주기와 재정순환 주기의
불일치에 따른 문제점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다시 말해 정부(정권)인수기에는 전임정부에서 결정한 재정선택에 따라
정부활동이 이뤄지고 정권이양기는 결정된 예산을 차기 정부에 위임하게
된다.

따라서 현재의 단임제 대통령하에서 대통령은 3회계연도 기간동안만
자신의 재정선택에 따라 정부를 운영할 수 있고 정권인수기와 이양기에
속하는 회계연도에는 재정정책의 결정자와 집행자가 달라지게 된다.

이처럼 정치적 순환주기와 예산주기가 괴리됨에 따라 정책선택의 일관성과
계속성이 실종되는 등 부작용을 낳고 있다.

정치순환과 재정순환의 불일치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을 몇가지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차기정부의 정책 판단이 요구되는 부문(공무원 봉급인상 등)의
예산은 재원만 계상해놓고 구체적인 집행기준(비율 요율 등)은 차기정부에
맡기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둘째 총액(총괄)예산 편성방식을 확대 도입하는 방안을 상정해 볼 수 있다.

가령 고속도로 공항 댐 건설 등 사회간접자본 분야 예산의 경우 총액으로
금액을 계상하고 차기정부가 지역별 우선순위 규모를 결정토록 하는 것이다.

셋째 예비비제도를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즉 예비비 항목으로 타당성조사비 등을 평상시보다 많은 규모로 계상,
차기정부의 정책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방안이다.

넷째 초긴축 기조로 예산을 편성, 세입 예산 운영상의 여유를 확보해줘
차기정부의 재정적 대응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원론적 관점에서 주요 정당이나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행정부가 많은
시일의 공론화 과정이 필요한 신규 대규모 사업예산 결정을 자제하는 것도
역설적으로 말해 차기 정부의 정책 선택의 폭을 넓혀 줄 수 있는 방안으로
꼽고 있기도 하다.

혹자는 정부 예산에 잠복돼 있는 비효율성을 제거하기 위해 4~5년에 한번
정도 소위 "대청소방식" 또는 제로베이스에서 재출발하는 쇄신적인 감축관리
노력이 전개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 "정치성"예산의 실상과 대응과제 =예산심의는 국회의 본질적 기능임에도
그동안 심의가 형식적 수준에 그치는 등 어떤 사안보다도 소홀하게 다뤄지고
있는 경향을 부인할 수 없다.

국회는 사실상 일부 국회의원 개인의 지역민원이나 교섭단체의 부분이익을
반영하는 데 집착하면서 정부제출 예산안의 미세한 부분만 손을 대고 통과
시키는 것이 하나의 정치관행으로 정착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배경에는 예산은 재경원 예산실이 만드는 것일 뿐 국회는 "통과의례"
수준이라는 고정관념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예산 국회철이 되면 흔히 정치성 예산(또는 선심성)편성에 관한
논쟁을 목격하게 된다.

대선이나 총선을 앞두고는 정치성 예산에 대한 논쟁이 더욱 가열되는
양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만큼 정치적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예산이 정치적 목적에 이용된다는
일반의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기 때문이다.

정치성 예산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산결정 기준의 상대적
성격을 지적할 필요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국회의 예산과정을 비판할 때 정치성 예산을 지적하고
있으나 이것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전혀 다른 결론에 이를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균형발전을 위해 배분되는 예산(예를 들어 산간오지개발 낙도
개발 등)의 경우 이를 자원배분의 효율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분명 비효율
적인 예산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형평성이라는 또 다른 정책목표에 비추어 볼때는 정부의
일정한 정책적 배려가 수반되어야 하는 바람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정부와 여당에서 주장하거나 이익투입이 이루어진 경우에는 정치성
예산이고 야당의 이익투입은 그렇지 않다고 보는 것도 다분히 상대적인
판단에 불과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예산 결정의 정치적 성격은 보는 관점에 따라 그 결과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수 있는 다분히 상대성을 띠고 있는 사안이라고 보여진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성 예산에 대한 국민적 우려는 증폭될 여지가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국민적 우려가 불식되기 위해서는 정치권 내에서 어떤
노력이 전개되어야 하는 것일까.

교과서적인 논의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국회의 주요 교섭단체가 각 부문별
정책 포지션과 향후 국정운영의 비전을 뒷받침할 재정정책의 총괄적
네트워크를 마련, 새로운 예산배분 구도를 제시하는 정치권의 기풍이 하루
빨리 정착돼야 한다.

의원들이 당해 지역의 사업을 하나라도 늘려잡으면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는
식의 파편적 예산심의 방식이나 예산 국회 말미에 예산결산위원회에서의
교섭단체간 무원칙한 주고 받기식 타협이 예산심의 과정의 근간을 이루는 한
국회활동의 정당성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주요 정당들은 대규모 사회간접자본시설(SOC)사업을 관철
하기 위한 경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나 국회의 주요 교섭단체가 공히
인정하는 긴급한 사업을 제외하고는 지역성 대규모 신규사업의 계상을 자제
하는 신사협정을 체결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지금까지 행정부 제출 예산안에 이미 수용된 당정협의는 여당의 몫,
그리고 국회의 심의는 야당의 몫이라는 정치적 예산배분의 관행을 타파하는
것도 정치성 예산의 굴레에서 벗어날수 있는 방안의 하나라고 간주된다.

주요 정당들이 각종의 선거공약을 단기적 시각에 입각, 해당 연도의
예산에 반영하려고 지나치게 집착하는 행태를 적절히 통제하는 사회 각계
각층의 노력도 필요하다.

< 정리 = 김호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