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9일은 "유럽의 날"이다.

47년전인 1950년 5월 9일 로베르 슈망 당시 프랑스외무장관의 "슈망선언"
발표를 기념한 날이다.

슈망선언은 독일과 프랑스의 석탄 철강분야를 공동시장화하자는 제안으로
당시로서는 충격적이었다.

그로부터 35년후인 1985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개최된 EU정상회담에서
유럽각국 지도자들은 5월 9일을 유럽의 날로 정한다고 선포했다.

슈망선언이 없었다면 오늘날 통합된 모습으로서의 유럽은 불가능했거나
지금보다 훨씬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실제로 슈망선언이 있은 다음해인 1951년 독일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네덜란드 룩셈부르크등 6개국은 파리에서 앞으로 운명을 같이 할 제도적
기초를 마련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조약을 체결했다.

유럽연합(EU)의 토대를 마련한 두 공동체인 유럽경제공동체(EEC)와
유럽원자력공동체(EURATOM)의 탄생도 ECSC의 근간에 기초한 것이다.

세계최대의 경제권 형성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유럽연합은 난산을
거듭한 끝에 탄생한 유럽합중국(United States of Europe)으로 봐도
틀림없다.

슈망선언이 있던 당시 각국이 실현가능성이 없는 "야심찬 계획"으로 등을
돌리던 것과 마찬가지로 통합과정때마다 겪게되는 협상결렬, 이로인한 좌절
위기감.

그러나 그럴때마다 유럽은 절묘한 타협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나갔다.

협상때마다의 의견충돌은 유럽의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언어적 문제들이
복잡하게 뒤얽힌데서 발생한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유럽통합의 주도권을 잡는데 혈안이 되었던 프랑스, 유럽대륙에 주권은
절대로 내줄수 없다는 입장을 초지일관하게 가졌던 영국, 경제력을 바탕으로
유럽연합의 맹주를 자처하는 독일 3대강국간의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다보니
통합유럽으로 나아가는 협상이 고비때마다 좌절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영국이 EEC에 가입하기까지 무려 9년이란 세월이 걸린 것도 드골 프랑스
대통령의 두번에 걸친 비토권 행사때문이었다는 사실은 유럽통합과정의
어려움을 한마디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유럽전문가들 중에는 유럽각국의 이같은 복잡한 이해관계를 이유로
경제통화통합(EMU)으로의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오는 99년 1월 1일부터 유럽단일통화인 유러(Euro)화 사용을 시작으로
2002년 7월 완료되는 EMU 3단계 통합일정은 정부와 야당 노조간의 마찰로
인해 차질을 빚거나 이보다 훨씬 늦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해말 실시된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독일 프랑스 영국
3개국 국민들의 유럽통합에 대한 반응은 2년전에 비해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통화단일화에 반대한다는 응답자가 영국의 경우 지난94년 55%에서
96년에는 58%로, 독일은 50%에서 52%로, 프랑스는 25%에서 29%로 각각
늘어났다.

노조를 중심으로 유럽통합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정부의 재정적자
감축노력으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들고 봉급이 감소하는 불이익을 감수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들 정부로서는 국민들의 상당수가 유럽통합에 반대하는데도 이를
무시하면서까지 통합작업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자체가 큰 짐인
것이다.

이같은 반대여론에도 불구,유럽통합을 향한 발걸음은 어느 누구도
되돌릴수 없을 것이라는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북미경제블록, 화교권을 중심으로 한 동남아블록등 세계경제여건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유럽의 생존전략은 "함께 뭉치는" 대안밖에 없다는
점을 유럽각국이 어느 누구보다 절실히 인식하고 있어서다.

통합유럽은 오히려 유럽을 세계최대의 경제권으로 부상시켜 21세기를
주도하는 강대국이 될수 있다.

역내 15개 회원국의 경제규모만 봐도 그렇다.

이들의 국내총생산규모(GDP)는 2000년께 전세계의 26.3%(WEFA)를 차지,
최대 경제권이 될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폴란드 체코 루마니아등 동유럽국가들과 러시아가 가입을
희망하고 있다.

과거의 적대국이었던 이들 국가들이 EU에 참여할 경우 EU의 세계지배는
거부할수 없는 현실로 다가오는 것이다.

문제는 유럽통합작업이 과연 개별국가의 "주권"까지 하나가 되는 정치적
통합의 실현이 가능하느냐의 여부다.

여기에는 두가지 시나리오가 나돌고 있다.

유럽연합이 정치적 통합의지가 결여된 채 경제를 중심으로 흡수될
것이라는 분석과 유럽연합의 핵을 이루고있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정치
경제 외교 방위문제를 통합하는 유럽연방으로 나갈 것이라는 전망이
그것이다.

유럽연합의 통합과정이 어느 정도까지 진전될지는 현상황에서 예측이
어렵다.

한가지 분명한 점은 유럽통합이 "완료된" 역사의 한 페이지가 아니라
진행중인 역사라는 사실이다.

[ 특별취재반 = 국제1부 김영규 브뤼셀특파원
이성구.김수찬.박재림.조성근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