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철학자 B 스피노자는 암스테르담의 유태인 거상의 아들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일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알경알을 닦아 생활을 꾸려
나갔다.

더구나 철학자로서의 명성이 널리 알려져 하이델베르크대학 교수직을
비롯한 호의적인 제안이 들어왔으나 이를 극구 사양하고 고고한 삶을
이어가다가 44세를 일기로 하숙집 다락방에서 쓸쓸히 삶을 마감했다.

그처럼 청빈한 스피노자였는데도 생전에 유산상속 다툼을 벌인 적이
있었다.

오빠의 성품을 잘 알고 있던 누이동생이 부친의 재산을 혼자서 독차지
하려 했던 것이다.

그에 크게 노한 그는 누이동생을 고소했다.

물론 재판에서 승소했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내일 세상이 멸망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평소의 성실한 신념에 따라 재산을 모두 누이
동생에게 넘겨주고 빈털털이로 살았다.

스피노자는 자칫 잘못하면 자신을 속박하거나 타락시키는 매개가 될수
있는 상속재산을 과감히 내던져 버리고 청빈함 속에서 도덕적 지능적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누렸다.

스피노자의 경우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엉뚱하게도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에게 막대한 유산이 남겨졌다는 일화도 있다.

프랑스의 가피텐 프라라는 대실업가가 평생동안 피땀 흘려 모은 재산을
둘러싸고 상속자들 간에 추잡한 다툼이 벌어지자 크게 낙심하여 거머리에게
유산을 주도록 하는 유언장을 남겨 놓았던 것이다.

상속자들 중의 일부 사람이 법원에 이의신청을 내고 소송을 하기도
했으나 각하되었다.

이 일화에 나오는 상속자는 거머리이지만 이 유산은 사회에 환원된
것이라는 유추해석을 내릴수도 있다.

최근 미국의 거부들이 자녀에겐 최소한의 돈만 물려준채 대부분의 재산을
자선단체에 기증하는 상속관이 정착되어 가고 있다 한다.

자식들에게 많은 돈을 물려 주면 그들의 장래를 망친다는게 주된
이유란다.

"후한서"에도 "유산을 남기면 자식이 놓고 먹는 위태로운 버릇에 빠지기
쉽다"는 뜻의 "유자손이안"이라는 말이 나온다.

우리도 되새겨 보아야 할 상속관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