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배 사장은 거의 빈사상태에서 햄버거도 못 먹고 있는 제인을 향해
식욕이 동한 늑대처럼 호시탐탐한다.

모든 것이 성적 욕망으로 귀결되는 상투적인 카사노바다.

제인은 그에게 병약한 먹이,즉 방금 낚아 올린 회가 동하는 물고기일
뿐이다.

"정신이 좀 나요?"

한컵의 우유가 그녀의 위속을 부드럽게 누그러뜨린다.

어느새 박동배 사장은 전자레인지에 햄버거를 뜨끈하게 데워오고 우유도
알맞게 데워다가 대령을 했다.

젊은 아가씨들과 바람을 피우는 것에 도가 튼 그는 주로 30, 40년
손아래 여자들만 상대하다 보니 젊은 여성들의 기호식품이나 취미까지
뚜르르 꿰뚫고 있었다.

제인은 정신이 좀 나자 다시 부스스 몸을 일으킨다.

그러다가 다시 픽 쓰러진다.

목이 몹시 타서 제발 한대의 대마초나 헤로인이나 코카인을 구해달라고
애원하고 싶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아마도 노신사는 다시는 자기를 본체도 안 할 것이다.

그녀는 한국에 온 뒤 겨우 대마초를 두세번 얻어 피웠을 뿐 마약같은
것은 사는 루트도 모르고 있다.

또 구태여 알려고 노력도 하지 않았다.

죽음같은 고통과의 싸움이다.

그녀는 마음속으로만 자기의 금단현상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자꾸
되뇌었지만 입은 안 떨어지고 있다.

이성과 본능과의 결사적인 싸움에서 그녀는 지금 이기고 싶다.

만약 이 호탕한 영감님이 아편쟁이를 사귄 경험이 있었다면 그녀를
창밖으로 내던졌을 것이다.

"좀 괜찮은가?"

"네, 감사합니다"

그녀는 창백하게 미소를 짓는다.

"자, 이 햄버거를 먹어봐요. 정신이 날 터이니. 배가 고프면 더 기운이
안 나요. 금강산도 식후경이지..."

결국은 도망을 갔지만 호텔 종업원이었던 핼쓱한 미인 아가씨 종순이를
그녀는 많이 닮았다.

길가에 쓰러져 있는 것을 차에 싣고 돌아와서 며칠을 간호해 반년쯤
동거를 했는데 어느날 종순이는 쥐도 새도 모르게 그의 돈을 몇백 훔쳐
가지고 도망갔다.

지금도 그는 종순이가 어디 아이인지,무얼 하던 아이인지를 모르고
있다.

다만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렇게도 순하게 자기말을 잘 듣고 순종하던
그 애가 갑자기 도망쳤다는 사실이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알고싶지 않고 찾지도 않았다.

돈이래야 겨우 4백50만원을 들고 튀었으니까 잃어버린 셈 치고 잊고
지내고 있었다.

박동배는 종순이의 순한 기질을 그녀에게서도 느끼면서 아무리 순하고
얌전한 여자도 늙은 남자에게서는 도망치고 말더라는 경험만 되새겨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