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하나로 억만장자가 되겠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벤처비즈니스에의 꿈을 키우고 있다.

국내로서는 만족할수 없다며 벤처의 본고장 미국으로까지 진출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벤처비즈니스로 한국의 21세기를 책임지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간판급 그룹웨어인 "워크플로"를 생산하고 있는 나눔기술의
장영승(34)사장은 떠오르는 별 가운데 하나.

장사장은 94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그룹웨어라는 개념을 도입,
기업네트워크시대를 연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룹웨어는 여러대의 PC를 네트워크로 묶어 결재 자료교환 스케줄관리
회의등 분산돼 있는 복잡한 업무를 온라인으로 처리해 주는 정보소프트웨어
이다.

그는 서울대공학계열 82학번으로 뜻하지 않게 컴퓨터와 인연을 맺었다.

친구가 대신 써넣어준 지망학과인 전자계산기공학과가 미달되는 바람에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게 된 것.

85년 5월23일에는 시국을 원망하면서 을지로1가 미국문화원에 뛰어들기도
했었다.

그런 그가 미국의 전자문서교환(EDI) 전문업체인 DGC사를 인수하면서
소프트웨어업계의 "무서운 신세대"로 탈바꿈한 것.

웹인터내셔널의 윤석민(30)사장.

그는 인터넷업계에서는 스타로 주목받고 있다.

과학기술원의 후배 4명과 신용카드 2장으로 94년에 시작한 사업을 3년만에
매출 30억원규모로 키웠다.

"고등학교 중퇴.검정고시를 거친 뒤늦은 대학진학.과학기술원 박사과정
자퇴..."

우여곡절끝에 뜻을 같이 하는 후배 4명과 신촌의 어느 빌딩 지하실에서
"S&T온라인"이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컴퓨터통신에 각종 온라인게임을 서비스하는 S&T의 사업은 PC통신 붐을
타고 순항을 거듭했다.

내친김에 웹인터내셔널이라는 회사를 설립, 인트라넷사업에까지 손댔다.

이 회사는 국내 처음으로 인트라넷 통합소프트웨어 제품군인
"인트라오피스"를 개발, 업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건인의 변대규(37)사장도 컴퓨터응용제품으로 성공한 케이스.

서울대 공대출신의 동기 후배를 설득해 서울봉천동 조그만 사무실에 건인
이란 간판을 내건 것은 89년 2월.

세계적인 기업을 꿈꾸며 내놓은 정밀측정계측기 비디오믹스가 신통치
않았다.

그러나 이대로 좌절할수가 없었다.

그래서 노래방기기로 불리는 디지털영상가요시스템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콤팩트디스크 한장에 2천8백곡을 담을수 있는 이 제품으로 국내외시장에서
돌풍을 몰고 왔다.

정보통신기기개발업체인 팬택반도체장비를 생산하는 팬택의 박병엽(35)사장
은 창업 5년만에 회사를 매출 6백억원규모로 키웠다.

그는 29세인 91년 회사에 사표를 냈다.

자신의 능력을 테스트해보고 싶었다.

정보통신쪽이 유망할 것으로 보고 무선호출기사업에 뛰어들었다.

자본금 6천만원에 4명의 직원으로 출발했다.

살길은 기술개발밖에 없다며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덤볐다.

그결과 자체반도체기술로 개발한 문자호출기를 선보였다.

동남아시장에서 날개 돋친듯 팔리면서 탄탄한 기반을 다지는데 성공한 것.

(주)아토의 오순봉(39)사장.

그는 경남공고 졸업후 13년동안 몸담아온 삼성전자를 그만두고 91년10월
아토를 설립했다.

미국 일본등에서 고가로 수입해 오고 있는 가스공급등 관련장비들을
국산화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오사장은 국산화한 가스캐비닛 열가스재순환청소장치 등을 일본 등에
역수출하고 있다.

올해에는 지난해의 두배 가까운 3백3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는게 오사장의
목표다.

골프스윙기 "닥터 골프클리닉"을 생산하는 그림전자의 김용훈(36)사장은
한국판 실리콘밸리인 "포이밸리"의 리더다.

서울대 제어계측공학과(95년부터 전기전자제어공학군으로 통합) 후배들이
운영하는 벤처기업가들의 좌장역을 맡고 있다.

그는 요즘 주위를 놀라게할 작품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스윙기를 개발한 여세를 몰아 세계 최고급의 영상 통신장비를 선보이겠다는
것이다.

이들만이 아니다.

"인터넷에서 "한글"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이찬진 한글과 컴퓨터 사장은
벤처쪽에서는 스타중의 스타급으로 평가된다.

안영경 핸디소프트 사장, 허진호 아이네트기술 사장, 조현정 비트컴퓨터
사장, 임영식 스탠더드텔레콤 사장, 서승모 C&S테크놀러지 사장 등도
빼놓을수 없다.

< 영파일팀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