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담배피우고 사람과 맞술을 권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정말 그러했는지는 알길이 없지만 자연과 더불어 살기를 좋아했고,
그 속에서 음풍농월하기를 즐겼던 우리 조상들은 그렇게 환경과 어우러져
살았는지도 모른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남새밭 귀퉁이의 감나무에 까치밥이라 하여 한두개의
감을 남겨두는 것은 어디를 가나 쉽게 볼수 있는 넉넉함의 표시였다.

그렇게 자연에 대한 배려가 있었고 그러면 그 혜택은 이듬해 몇배가 되어
언제나 우리 인간에게 되돌아 오는 것이었다.

자연은 이렇게 존재하는 모든 것이 서로 기대고 도와주며 함께 노니는
터전이었다.

그 속에서 자연의 섭리와 순리에 따라 선인선과, 악인악과하며 행한대로
받고 지은대로 꾸려가는 것이 삶의 기본 모습이었다.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 노인이 1백년만에 열리는 사과 나무를 심고 있길래 지나던 랍비가
"선생은 너무 나이들어 이 사과가 열릴 때까지 살수 없을것 같은데 왜 나무를
심습니까"하고 묻자 그 노인은 "내가 어렸을때도 누군가 사과나무를 심어놓아
내가 그 과실을 수확할수 있었소"라고 했다.

그렇다.

자연은 미래세대의 몫이라 하고, 잠시 빌려온 것 뿐이라고, 그래서 온전히
되돌려 주어야 한다고 논객들은 심심찮게 열을 올린다.

우리는 전쟁상처를 딛고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고, 올림픽 개최의 영광을
안았으며, 국민소득 1만달러를 달성하면서 OECD에 가입하는 눈부신 발전을
해왔다.

그러는 과정에서 호랑이가 놀았던 숲도, 호랑이와 대작을 나누면서 풍월을
읊조렸다던 옛 어른들의 유유자적함도 모두 잃어가고 있다.

올해도 경제가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삶의 질 향상이 우리 모두의 한결같은 목표일진대 환경규제 때문에 경제가
위축된다는 주장은 이제 접어두자.

2인3각 경주처럼 조화롭게 환경과 경제는 어깨동무하여 나아갈수 있다.

개발이 자연의 과실만을 거두고 그 원본을 잘 가꾸며 줄기를 다치지 않게
하면 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