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말 많은 사람들은 올해 원화가 절상되거나 절하되더라도 연말 환율이
달러당 8백원 수준을 밑돌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엔화가 소폭의 약세를 보이는 가운데 OECD가입을 전후한 외환.
자본자유화 조치로 큰 폭의 자본유입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실제 연말 환율은 8백50원수준에 육박하고 있어 이로인한 환차손이 엄청난
것으로 보인다.

환차손을 줄이기 위한 환위험관리기법중 가장 보편적인 것들을 소개하면
네팅과 매칭, 리딩과 래깅, 가격정책 등의 대내적 기법과 선물환, 선물,
옵션 등의 대외적 기법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선물환 등 대외적 기법을 사용하여 원화환율의 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기 때문에 대내적 기법을 사용하여
환위험을 관리할 수밖에 없다.

환위험을 회피하려고 해도 그 수단이 매우 제약돼 있는 실정이다.

환위험 관리시 미래의 환율에 대한 예측력을 높일수록 적절한 위험관리의
방법을 강구할 수 있으므로 환율의 예측이 환위험관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내년의 환율은 어떻게 된다고 보아야 할까.

내년도 환율을 예측하려면 국내외 경제여건과 정책방향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 경제는 경기급랭과 경상수지적자 급증을 함께 경험하고 있다.

올해 경상적자는 2백억달러를 넘을 것으로 전망돼, GDP대비 4%를 상회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이렇게 경제가 어려워진 것은 내부적 요인도 크지만 그보다는 85년이후
10년간이나 우리 경제를 떠받들어 온 엔화강세 시대가 마감되고 반도체가격
하락에 주도되어 교역조건이 올해들어 15%이상 악화되는 등 외환이 겹쳤기
때문이다.

해외여건악화의 충격은 정도는 다르지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의 경제도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해외여건은 내년에도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내년에도
대규모의 경상수지적자가 예상된다.

따라서 내년중 추가적인 자본자유화 조치로 해외자본이 유입되더라도
원화는 약세기조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며 내년중에도 외화자산과 외화수익을
늘리는 환위험관리대책이 요구된다.

내년중 환율예측에 있어서의 요체는 정부와 중앙은행이 환율 및
경제안정화정책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현재 우리 경제의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는 과도한 경상적자를 축소하기
위한 정책대안으로는 원화를 절하시켜 경상수지 개선을 도모해야 한다는
"환율론자"의 주장과 통화와 환율을 안정시켜 경상수지를 개선시켜야 한다는
개방경제하의 "통화론자"의 주장이 대립되어 있다.

먼저 "통화론자"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원화를 절하시키면 경상수지가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수입가격상승,
외채이자부담증가 등으로 기업의 환차손이 커지고 국내물가가 상승한다.

따라서 원화절하 대신 통화와 환율의 안정에 의한 물가안정이 이뤄져야
경상수지가 개선될 수 있다.

이같은 주장은 남미의 경제자유화 과정에서 제기된 통화론자들의 주장과
일치하는데 그들의 강력한 반인플레정책은 국내금리 상승과 극심한
경기침체로 막을 내렸다.

통화긴축과 환율고정은 국내금리를 올리고 투자를 위축시키며, 국내외
금리격차 축소실패에 따른 자본유입으로 경상적자 확대에도 불구하고
자국통화가 절상되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물가안정은 언제 어디서나 좋은 것이다.

인플레기대심리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통화정책을 안정적으로 운용해야
하며 환율이 투기적 변화를 보이지 않도록 외환시장을 안정시켜야 한다.

그러나 안정정책이 지나쳐서 통화정책을 매우 경직적으로 운용하며
자국통화가 절하되어야 하는 시점에서도 인플레를 우려하여 자국통화의
절하를 기피한다면 결국 안정화정책의 총체적 실패로 종결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과도한 경상적자를 축소하기 위해서는 국내투자율을 낮춰야하며,
6%의 경제성장도 낮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낮은 투자에 따른 저성장에도 불구하고 국민저축률이
낮아지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만 타당하다.

우리나라는 과거 1-2차 오일쇼크를 비롯하여 몇번의 국제수지 위기를
경험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물가안정이나 경상수지적자축소 목적으로 국내투자를
희생한 경험이 없음을 상기해야 한다.

투자를 줄이려고 하기보다는 사회간접투자, 연구개발투자 등 제한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조세.금융면의 특혜를 없애고 시장이 가장 효율적인
투자사업을 선택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함으로써 투자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한편 "환율론자"들은 경상수지가 적자를 보이면 통화와 금리를 신축적으로
운용하여 원화가 절하되도록 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화절하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재정긴축을 강조하며, 원화절하에 따른
물가상승압력에 대처하기 위한 유통구조개선 규제완화 경쟁촉진 등의
자유화 대책도 강조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원화절하는 길어야 1년의 시차를 두고 경상수지를
개선시키는 것으로 타나나고 있다.

따라서 경상수지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국내금리를 낮추고 원화가
절하추세를 보이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정책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해 기업의 환율예측가능성을 높이고
환차손을 줄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자본시장개방으로 주식시장의 해외자본 의존도가 커진 상황에서
원화가 절하되면 자본유입이 둔화되어 국내 주가가 하락하고 금리가
상승하는 반면 경상수지 개선효과는 매우 더디게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원화절하의 부작용을 우려하여 원화절하를 기피하면
문제가 오히려 심화될 뿐이다.

경상수지적자에도 불구하고 환율이 안정되어 있으면 해외자본유입이
계속되며 주식시장과 자금시장을 떠받친다.

하지만 경상적자의 누적으로 절하가 예상되면 해외자본은 가차없이
떠나버리고 전면적인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오늘의 원화절하의 고통은 내일의 기쁨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