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은행 박수용대리(29)가 출퇴근할때 타고다니는 승용차는 지난해
할부로 구입한 신형쏘나타II.

박씨의 직속상관인 K부장은 89년형 프라이드를 몰고 다닌다.

물론 자신의 상급자보다 더 큰 차를 몰고다니는 이 "하극상"에 눈쌀을
찌푸리는 "쉰세대"들이 회사내에 없는 것은 아니다.

불과 5~6년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

더욱이 이들은 얼마전 결혼한 박씨가 서울 근교의 3,000만원짜리
전셋집에서 살고 있다는 점에서 그를 "딱한 사람"으로 생각하기까지 한다.

"집은 없고 차만 있는" 신세대 직장인 박대리를 과소비의 주범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박대리가 볼 때 딱한 사람은 자신이 아니다.

오히려 아직도 사람마다의 개성과 다양한 가치관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성세대들이다.

일을 할 땐 상급자일지 모르지만 무슨 옷을 입고 어떤 차를 타느냐고
하는 소비생활은 순전히 개인의 프라이버시일 뿐이라는 것.

젊은 세대의 인간 유형이 "직장형"에서 "개인형"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다.

집을 장만하려고 아옹다옹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렇다.

"집은 더이상 투자의 대상이 아니잖아요.

1억원짜리 집 살 돈이 있으면 은행에 맡겨놓고 그 이자로 더 윤택한
생활을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H그룹 유호철대리)

돈을 모아 부동산 형태로 재여놓기 보다 경제적 풍요를 직접 느껴보고
싶다는 얘기다.

신세대와 쉰세대는 돈을 쓰는 방법이 다르다.

이들간 소비행태의 차이를 한마디로 규정한다면 "현재형 소비"와
"미래형 소비"라고나 할까.

기성세대가 현재의 삶을 자녀를 위해 희생 봉사하고 대신 노년에
이들로부터 보호받기를 원하는 미래형 소비주체라고 한다면 신세대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금 바로 삶의 보람과 행복을 추구하는 현재형소비다.

이것을 한마디로 "절약"세대와 "과소비"세대간의 차이로 매도하는
것은 어쩌면 현상을 너무 단순히 본 것일 수 있다.

"신세대형 소비행태란 말을 많이 하지만 사실 80년대 이전의 젊은
세대에게 소비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나 있었습니까.

소득 1만달러 시대라면 그에 맞는 생활의 질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K기업 김재해씨)

이들 신세대가 젊었을 때 흥청망청 낭비하고 노년을 자녀에게 의존하려는
것은 아니다.

연금형 보험에 가입하는 이들의 비율도 40대 이후보다 20대나 30대들이
압도적으로 높다.

대우경제연구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20~30대 젊은층의 절반정도가
옷을 세일기간에 사거나 할인매장에서 구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50~60대는 겨우 20% 남짓만이 세일기간 동안에 또는 할인매장을
이용해 쇼핑을 하고 있었다.

최근 발표된 한 조사기관의 조사를 보아도 최근 1~2년간 전체 소비
지출에서 20대와 3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신세대들이 오히려 알뜰하다는 것.

물론 외식비 여행비 등 생활의 질을 높이기 위한 "선택적 소비"는
늘어나는 추세다.

그렇다면 백화점에 가서 충동구매를 하거나 값비싼 고급술집에서
술값을 퍼쓰는 이른바 무계획 무절제형 "과소비"의 진짜 책임은
오히려 삶의 여유를 즐길 줄 모르는 기성세대들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

< 김주영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