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와 에콰도르에 사는 사람들은 연안 해역을 따라 북상하는 한류인
페루해류가 남하하는 난류로 대체되는 것이 반가우면서도 두렵다.

해마다 크리마스무렵 부터 다음해 4월이후까지 해역을 흐르는 난류가
바나나 코코넛 등 작물의 재배에 비를 내려주는 한편으로 어획량을
급격히 감소시키고 있기때문이다.

그러한 해류의 변화는 남태평양 동부에 있는 칠레의 화산섬인 이스터
아일랜드 부근의 상공, 남태평양 서부에 있는 인도네시아와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의 상공에서 발생하는 두개의 기압중심부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동쪽의 고기압의 뜨겁고 건조한 기상조건을, 서쪽의 저기압은 습하고
냉한 기상조건을 발생시켜 이 두지대 사이에는 동풍이 불게 된다.

이 동풍이 남미해안으로 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난류를 흘러가게
만든다.

그때 무역풍이 강하게 불게되면 두 지역간의 기압차이가 없어져 바람이
잠잠해지면서 난류가 남미해안을 향해 다시 밀려들기 시작한다.

남미의 어부들은 그 난류가 은혜의 비를 가져다준다고 해서 그것을
스페인어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뜻을 지닌 "엘리뇨"라고 불렀다.

문제는 이 엘리뇨가 국지적으로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때론
대규모화 되어 전세계에 걸쳐 큰 재앙을 가져다 주고 있다.

"해양은 해류에 의해 내순환을 한다"는 법칙에 따라 엘리노 또한
아메리카 대륙의 해안을 따라 북쪽과 남쪽으로 흘러가고 그 일부는 적도
해류에 합류함으로써 그 여행이 지구 곳곳에 광범위하게 미치게 된다.

지난 82, 83년 세계적으로 잇따라 일어난 자연현상의 이상 징후도
엘리노의 결과였다.

태평양 연안의 미국 포틀랜드와 오리건, 캘리포니아 샌디에고 앞바다에는
서식지에서 멀리 떨어진 아열대 어종이 나타났고 로키산맥 일대에는 사상
최대의 눈이 내렸다.

남미의 에콰도르에서는 때아닌 폭우가 쏟아져 수많은 가옥과 도로 교량이
파손되고 농작물이 절딴났는가하면 페루연안에서는 그렇게 많던 멸치가
자취를 감추어 어부들이 일손을 놓게 되었다.

아프리카에서는 가뭄과 기아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 갔고 오스트레일리아
에서도 20세기 최악의 가뭄이 들어 25억달러상당의 가축이 몰살 되었다.

미항공우주국이 이번에 공개한 위성촬영 지구기상도는 적도부근에 엘리노
현상이 점점 확대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어 언제 또 다시
엘리노의 재앙이 닥쳐 올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현재로서는 엘리노의 방문시기나 그 규모를 예측할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