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무경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니 더 얘기할 필요가 없겠소.그런데
말이오 데라지마공,조선국에 관한 문제는 각료회의에서 공식적으로
논의하지 않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산조의 말에 데라지마가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짓자,이와쿠라가 얼른 받아서 낮은 목소리로
보충설명을 하듯 말했다.

"왜냐 하면,조선국 문제는 아주 민감한 데가 있지 않소.어느덧
2년전의 일이기는 하지만,그 문제로 정변이 일어나 사이고를 비롯한
정한파 각료들이 태정관을 떠났고,그들을 따르는 무리가 줄줄이
사표를 내던지고 관직에서 물러났는데,그때 내치 우선을 내세워
정한론을 극력 반대했던 우리가 비록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고는
하지만 무력으로 조선국의 빗장을 열어젖히려고 든다는 것은 그들의
눈에 좋지않게 비칠게 뻔하지 않소.틀림없이 그들의 감정을 자극할
거란 말이오.그러니까 그 문제는 각료회의에서 공개적으로 논의할게
아니라,극비에 붙여두고,은밀히 추진하는게 옳을것 같다 그거요"
"알겠습니다.

그럼 어떻게.?" 그러자 다시 산조가, "데라지마공이 그 일을 맡아서
잘 추진해 주오.어차피 외교문제니까" 하고 당부를 하였다.

"저.오쿠보 도노의 승낙을 안받아도 되겠습니까?" "염려마오.다
얘기가 돼 있으니." "아,그렇군요.

그렇다면 아무 염려 마십시오.소생이 책임지고 잘 해내겠습니다"
매사에 노련한 이와쿠라가 끝으로 중요한 한마디를 덧붙였다.

"한가지 반드시 유의할 것이 있소.뭔가 하면.절대로 우리가 먼저
도발을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오.상대방에서 도발을 해오도록 유도를
해야 된다 그거요" "아,예,예" "정한파 쪽에서 볼때 만부득이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도록 말이오.그리고 서양 공사들이 이러쿵 저러쿵
또 말썽을 부리는 일이 없도록,정당방위처럼 감쪽같이 일을 꾸며야
된다 그 말이오" "예,알겠습니다" 데라지마는 일이 썩 흥미있다는
듯이 살짝 눈언저리에 웃음을 내비쳤다.

조선국의 쇄국정책을 개국정책으로 뜯어고치는 중대한 임무를 부여받은
데라지마는 그 날은 혼자서 그 일에 대한 몇가지 구상을 해본 다음,이튿날
해군대보(차관)인 가와무라 스미요시(천촌순의)를 자기의 집무실로
불렀다.

외무경이 자기를 호출하다니,뜻밖이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가와무라에게
데라지마는 말했다.

"아주 중대한 일로 상의를 할까 해서요"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