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미디어는 이제 참신한 단어가 아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는 이데올로기로서도 멀티미디어는
수명을 다했다.

적어도 일반인들보다 이 분야에 관한한 몇년을 앞서 살아가는 연구원들에게
는 그렇다.

캘리포니아주 팔로 알토에 있는 휴렛팩커드 중앙 연구소에서는
멀티미디어를 통해 무엇을 보여줘야 한다는 조급함을 찾을 수 없다.

또 멀티미디어 기기를 개발했다는 자랑도 눈에 띄지 않는다.

"HP는 가장 값싼 멀티미디어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휴렛팩커드의
찬드라 벤카트라멘 책임 연구원(38 미디어 기술연구소)이 듣고 싶어하는
말이다.

멀티미디어는 일반인들에게 보다 많은 선택의 기회를 제공해주며
자유의 폭은 결국 가격이 낮아짐으로 해서 넓어진다는 설명이다.

인도출신의 찬드라 연구원은 "멀티미디어는 부자인 미국에서도,가난한
인도에서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멀티미디어는 환상이 아닌 현실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인터액티브
TV나 비디오 온 디맨드 서비스를 신기하다고 해서 원할 것이라는
전제는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휴렛팩커드 연구소는 기존의 모든 정보통신 자원을 멀티미디어와
접목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거창하게 새로운 멀티미디어 시스템을 만들기 보다는 공중전화선을
이용한 영상 제공시스템인 "비디오 다이얼 톤"서비스,TV에 부착할
수 있는 프린터 개발등이 휴렛팩커드가 추진하는 일들이다.

휴렛팩커드 중앙연구소 조엘 버른바움 소장(52)은 "멀티미디어는
기업간에 협력관계와 대학과 기업 연구소간의 역할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멀티미디어에서는 모든 것을 혼자 하려는 영웅주의는 통하지 않는다.

멀티미디어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방대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휴렛팩커드는 타임워너 TCI사등과 협력해 멀티미디어 연구를 수행하고
"인터액티브 비디오 이니셔티브"라는 협력 연구 프로그램을 진행시키고
있다.

이같은 협력 프로그램은 대부분의 업체들이 다 갖고 있다.

뉴욕 요크타운의 IBM 왓슨 연구센터에 들어서면 시대의 변화를
뚜렷하게 느낄 수 있다.

이 연구센터는 중대형 컴퓨터보다는 네트워킹 컴퓨터 분야에 개발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IBM에 어울리지 않는 것같다.

그러나 이미 많은 사람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일을 하기 시작했으며
PC는 정보의 수집및 저장 도구로 자리잡았다는 것이 IBM의 판단이다.

왓슨 연구소는 전자회의 전자우편 영상전화 원격강의 1대1통신
원격진료등을 주요 개발과제로 선정했다.

유연성을 갖는 멀티미디어 시스템 개발도 중요 과제다.

디지털 형태의 데이터를 자유롭게 변화시켜 여러가지 멀티미디어
기기에 적용하는 것이 멀티미디어 시장을 넓히는 길이다.

멀티미디어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주의깊은
연구가 요구된다.

IBM은 영상대화를 기술보다는 인간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려고 한다.

안토니오 루이즈 박사(40 정보시스템 개발부)는 "사무환경이 변화함으로해
서 사람들은 만날 필요가 줄어든 대신 그만큼 친밀함을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게 됐으며 이를 해결하는 도구가 바로 영상대화"라고
말했다.

산학협동의 구체적 내용이 멀티미디어에서는 달라지고 있다.

인간에 대한 새로운 탐구를 대학이 담당한다.

스탠포드 대학 멀티미디어 연구소는 휴렛팩커드와 함께 "상호대화성과
응답시간의 관계" "인간의 인식모델연구"등을 수행하고 있다.

IBM은 MIT 연구소등에 인간공학적인 측면의 연구를 맡기고 있다.

대학이 인간에 대한 기본 연구를 수행하고 기업이 이를 바탕으로
멀티미디어 제품에 적용하는 새로운 산학모델이 자리잡고 있다.

결국 멀티미디어는 기술적인 화려함보다는 사람들에게 선택받음으로써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