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예산에서 7천억원을 떼내 국채상환예산을 편성한다는 아이디어를
짜낸 이영탁 예산실장은 처음엔 여당인 민자당조차 거센 반발을 하는
바람에 고민이 많았다는게 예산관계자들의 전언.

세금이 많이 걷혀 돈이 남으면 사회간접자본등에 투자해야 한다는 비판이
주류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세계잉여금이 생기면 그때가서 빚을 갚으면 된다는 논리를
펴기도 해 흑자재정의 필요성을 인식시키는데 애를 먹었다는 설명이다.

흑자재정에 대한 반론이 수그러들기 시작한 건 한국개발연구원(KDI)주최로
공청회가 열리면서 부터다.

"왜 진작 흑자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느냐"는 의견이 제기되는등 공청회에서
반대론이 전혀 없어 예산실 관계자들도 의아할 정도였다는 것.

더구나 김대통령이 흑자예산을 편성하도록 지시하고 나서는 민자당에서도
반대론이 쑥 들어가 사상 최초로 편성단계에서부터 국채상환예산을 편성
하는게 가능해졌다는 얘기다.

<>.올해 예산편성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내년의 지방자치제 실시를
앞두고 거세진 지역예산요구를 처리하는 일이었다는게 예산담당자들의
공통된 지적.

쓸돈은 빠듯한데 우선순위를 무시한 예산요구를 일일이 들어줄수도 없었을
뿐 아니라 밀려드는 로비성 방문때문에 업무에까지 지장을 줄 정도였다는
것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의원은 물론 지방의회의원 지역주민들까지 몰려와
지역사업에 대한 예산을 내놓으라며 "협박성"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는
것.

어느 지방의회의원은 "예산을 배정해 주지 않으면 의원직을 벗겠다"
"탈당하겠다"고 하는가 하면, 심지어 "반정부활동을 하겠다"는 인사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각 시도가 치열한 로비를 벌인 신규항만개발사업이 대표적인 사례.

인천 보령 새만금 목포 가덕도 울산 포항등 7개 항만건설을 둘러싼 경쟁이
워낙 심해 내년 예산에 우선순위를 정하기위한 용역을 주는 선에서 마무리
지어졌다.

이와관련, 이영탁예산실장은 "의원들이 지역사업예산을 따내는 것이 지역
주민을 위해 할수 있는 봉사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면서 "지방자치제
실시에 대비해 치안 교육등 각 지방에서 할수 있는 일은 각 지방에 넘기는
작업이 절실함을 느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올해 처음 실시된 국방예산심의도 예상외로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는게
예산실의 자체평가.

과거 국방예산은 총액만 심의했을뿐 구체적인 내용은 국방부에 맡겨왔기
때문에 제대로 심의할수 있을지 걱정이 컸으나 국방부의 적극적인 협조
덕분에 사상 최초의 국방예산심의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예산실 관계자는 "국방부가 예산실의 편성작업을 돕기위해 중령급 실무자
2명과 국방과학연구소 직원 1명을 파견하는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국방부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이같은 협조에 힘입어 과거 말썽이 일기도 했던 율곡예산을 비교적 자세히
심의할수 있었다는 것이다.

작년까지만해도 약 3조원에 달하는 율곡예산은 총액만을 정해 국방부에
일임했으나 이번에는 지상전력 해상전력 항공전력 통합전력 연구개발등
5개부문으로 나누어 심의했다는 설명이다.

더구나 요구액중 2천억원 정도를 삭감할 정도로 예산실이 국방예산을
통제했던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는게 예산실이 내세우는 성과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