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민족이나 나라가 지녔던 문화의 실체를 확인시켜 주는 것은 유물
이나 유적이다. 그 민족이나 나라의 얼이 담기고 입김이 서리고 손때가
묻은 유물이나 유적들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투시할수 있는 예지를
얻을수 있기 때문이다. 유물이나 유적의 발굴 보존은 어느 것보다도 가치
있는 일이라는 얘기다.

우리 민족의 오랜 역사에서 세계에 내놓고 자랑할수 있는 문화라면 흔히
신라의 그것을 드는 것이 상식이 되어 왔다. 그것은 바로 수많은 찬란한
문화 유산들이 지금까지 보존되어 그 실체를 드러내 주고 있는데서 이유가
찾아 진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신라에 정복되어 병합된 백제의 문화는 문헌상으로나
전해져 왔을뿐 거개가 말살되다싶이 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나라는
망하더라도 문화의 족적은 남겨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백제의 경우에는 그
예외였다.

지난 1971년 백제 제25대 무녕왕과 왕비의 능이 공주에서 발견되었을 때
관심이 어떤 것보다 컸던 것은 백제의상체가 너무나 빈약한 상태였다는데
까닭이 있었다. 백제유적으로서는 처음으로 도굴당하지 않은채 완전한 모습
을 드러내면서 수백점의 훌륭한 금속유물을 세상에 쏟아 내놓았다. 그것은
백제문화의 수준을 가늠케 해주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무녕왕릉의 발굴견은 3,300여년전에 살았던 전설적 테베의 소년왕 투탄카
멘의 묘가 1922년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카터에 의해 이집트 룩소르에서
찾아졌을때 왕의 황금마스크를 비롯한 헤아릴수 없이 많은 부장품들이
나온 것에는 질과 양에서 비길수 없으나 백제사를 재조명할수 있게 되었다
는 입장에서 보면 투탄카멘묘의 그것에 견줄수있는 중요성을 지닌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부여의 백제시대 공방터에서 1,400여년전 고도로 발달
했던 백제의 회화와 금속공예수즌을 보여주는 국보급 굴동향로 완형을 비롯
한 유물 450여점이 출토되어 백제문화사 복원에 서광을 전해주고 있다. 특히
향로는 국내에서 발굴된것 가운데 가장 크면서도 다양한 인물상과 동물상이
화려정교하게 조각된 것으로 한국미술사에 또 하나의 큰 획을 긋게 되었는
것이다.

백제의 빛이 또 한줄기 드리워진 것을 보면서 유물과 유적이 과거와 현재
를 이어주는 중요한 끈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