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자 : 황창순 한국청소년개발원 선임연구원.사회학>

최근 서울의 한 호텔에서는 외부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소규모의
국제심포지엄이 열렸다.

이 모임의 영문제목을 직역하면 "동아시아에서의 민간 박애주의에 대한
국제회의"정도이지만 이 모임이 의도하는 내용은 동아시아의 공익재단활동
이나 민간기업재단활동에 대한 포럼이었다. 미국과 일본을 주축으로
동아시아의 여러나라에서 공익재단을 연구하는 학자와 재단관계자들이
모여서 이 지역에서의 재단활동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했다.

이에 즈음해 우리사회 공익재단활동의 현실과 미래를 다시 생각해
보게된다.

지난 몇십년동안 우리의 기업들도 재단설립자의 의지와 사회의 필요를
고려해서 많은 재단을 설립했고 그 종류도 다양하다. 중.고교생들의
등록금을 보조해 주는 고전적인 사업에서부터 학술지원이나 영재교육,
우리사회의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에 이르기까지 공익재단활동이 그 양이나
질에 있어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 하지만 아직도 미흡한 점이나
개선의 여지가 많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비교의 대상을 저 유명한
미국의 록펠러재단이나 포드재단까지 삼지 않더라도 어떤 기업재단은 설립
신고를 해놓고서도 담당직원이나 독립된 사무실이 없는 경우도 있고,
재단활동도 지난 몇십년 동안 줄기차게 중.고등학생들에게 장학증서나
불쏙 내주는 타성에 젖은 경우도 많다. 장학재단 사업이 가치있고 여전히
계속되어야 하지만 우리의 기업재단도 이제 너무 쉽게 또는 안일하게
재단을 운영하려는 자세가 있다면 재단을 설립한 목적을 다시한번 되새겨야
할 것이다.

평생에 모은 돈을 장학금으로 희사한 "김밥파는 할머니"의 미담이 소위
말하는 기부(donation)의 원형쯤 된다면 기업이 공익재단을 설립해서
사회가 필요로 하는 말 그대로의 공익사업에 투자하는 것은 그 규모나
효과면에서 기부활동의 맏형이 됨직하다. 기부라는 것이 따지고 보면
부자가 가난한 자를 돕는 가장 세련된 방법이기도 하고, 사회의 부가
자연스럽게 재분배되는 메커니즘이기도 하며 무엇보다도 우리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파트너십을 가지고 함께 걸어가는 징표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기업이 설립한 공익재단의 증대가 우리사회를 이끌어 가는 두 기본 원리인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중시하는 자원주의(voluntarism) 다원주의 이타주의
참여의 고양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금융실명제 실시와 더불어 숨겨져 있던 많은 돈이 갈곳을 정하지 못한채
우왕좌왕한다는 소문을 듣고 혹시 설립근거나 활동내용을 믿을만한 비영리
모금재단을 찾는 사람이 없는지 궁금하다. 어느 대기업에서 탁아소를
건립한 것이나 소년소녀 가장을 위한 아파트를 건립한 것을 자랑스럽게
광고하는 것을 본다. 우리의 기업들도 비영리적인 공익사업이 회사의
이미지를 높일뿐만 아니라 우리사회와 국민의 복지를 위해 특히 불리한
조건에서 삶을 영위하는 집단들에게 그들의 불리함을 보완해 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런 불황에 무슨 팔자좋은 소리냐고 할지는 몰라도
어려운 때일수록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꽃인 기업재단의 활성화에 눈을
떠야할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같은 거창한 논리를 빌리지
않더라도 이 나라에서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하는 가장 명예롭고 보람있으며
지속적인 가치를 가지는 것은 전문가에 의해 유지되는 공익재단을 설립하는
것이다.

우리사회의 곳곳을 보노라면 재정적인 한계를 가진 국가가 일일이
관여할수도 없고 또 민간재단이 아니면 떠맡기가 힘드는 크고 작은
영역들이 너무나 많다. 기업에서 자생적으로 생긴 공익재단이 뿌리를
내릴때 우리의 21세기와 통일한국은 또다른 잠재성을 가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