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도쿠가와나리아키의 죽음은 병사와 자객에 의한
피살,그리고 독살,세가지 가운데 하나인데 어느 것이 정확한 것인지,그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채 세월의 흐름과 함께 차츰 잊혀져서 역사의 장막
뒤로 묻혀들어가 버리고만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일본의 역사는 그의
죽음을 미도번의 공식 발표대로 심장병으로 인한 사망으로 기록하고 있다.

마루에 앉아 사이고가 오쿠보의 편지를 읽고 있을때 아이가나는 한쪽 끝에
걸터앉아서 남편의 표정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불안해서
얼굴이 약간 새하얗기까지 했다. 혹시 사쓰마로부터 무슨 남편에게 기쁜
기별이라도 오지 않았는가 싶어서였다. 남편에게 기쁜 소식은 곧
그녀에게는 슬픈 소식이니,참으로 심정이 착잡하지 않을수 없었다.

편지를 다 읽고나서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는 남편의 표정이 어두워
보이자,그제야 아이가나는 속으로 후유.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기쁜
소식이 아닌게 분명했던 것이다.

사이고는 편지를 도로 둘둘 말면서 힐끗 아내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아이가나는, "무슨 편지예요?" 하고 물었다. 그러나 사이고는,
"당신은 몰라도 돼"
무뚝뚝하게 자르듯이 대답했다.

아이가나는 더 캐묻고 싶지도 않았다. 남편이 혹시나 사쓰마로 돌아가게
될지 모르는 그런 내용이 아니라면 굳이 알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뒤로도 드문드문 사쓰마로부터 소식이 오긴 했으나,반가운 기별은
없었다.

그해도 가고,이듬해 정월 초이튿날 아이가나는 아들을 낳았다. 서른네
살에 처음으로 아들을 가지게된 사이고는 무척 기뻤다. 이름을
기쿠지로(국차랑)라고 지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아들을 얻은 며칠뒤에 사쓰마의 번청으로부터 봉록을
올해부터 연 십이석으로 인상해서 지급한다는 통보가 왔다. 여섯 섬에서
열두섬으로 두배 껑충 뛰어오른 것이었다. 마치 장남의 출생을 축하하는
격이었다.

섭정인 히사미쓰의 보좌역이 된 오쿠보가 힘을 썼던 것이다. 오쿠보는
이제 사이고의 시마나가시를 사면하여 사쓰마로 돌아오도록 하고 싶었다.
그러나 히사미쓰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서 시마메카케를 얻어 가정을
꾸민 사이고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서 봉록을 인상하는 조치라도
취하는게 옳겠다 싶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