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반 때의 일로 기억된다. 가까운 친구들이 봉천동 하숙방에 자주
모여서 졸업후의 진로에 대해 이야기 하곤했다. 그런데 정작 제대로
취업을 하겠다는 친구는 거의 없었다. 대개가 고시공부 유학준비등을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군에 입대한다는 것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우리는
여전히 "매일실업"이구나 하는 말을 했다. 그후 친구들이 결혼때 함을
지기 위해 자주 만나던 친구들을 중심으로 모이게 된 친목계 이름도
매일실업으로 이름짓게 된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지 15년,주공에서 근무하다 뒤늦게 미국유학을 떠난
이인성군이 곧 돌아온다니까 이제 매일실업 간판을 내려야 할 판이지만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어쩌다가 중국음식점에 가족모임을
예약하면 안내판에 버젓이 (주)매일실업으로 기재되니까 말이다. 언젠가
명실상부한 매일실업을 설립할 꿈도 꾼다. 코오롱의 김철배 권용대
과장,동국무역 선석기 철강과장,그리고 영원무역의 김철주 이사등 기업에서
열심히 뛰는 친구도 있고 성균관대 장학과의 이왕봉군,강희철 고문변호사와
부산에서 방사선과를 개업하고 있는 장휘열 주치의등이
매일실업회원들이다. 게다가 그간 미국 프랑스 일본 홍콩등지에
매일실업의 지사를 운영해 왔으니까 국제경험도 풍부한 편이다. 문제는
필자를 비롯해서 김도훈(산업연구원) 안종길(조세연구원) 염명배(충남대)등
경제를 논하는 이들이 너무 많아 배가 산으로 갈까 걱정이다.

회원 12명이 12년 걸려 결혼해서 12명의 아내를 얻어 현재 딸 12명과 아들
12명을 두었는데 큰딸과 막내아들의 나이차가 12살이다. 묘한 것은
결혼할때의 신부나이가 대체로 비슷해서 도둑타이틀이 몇차례에 걸쳐
계승되었다. 벌써 10년째 매달 집집마다 방문하여 만나다보니 나의 인생과
친구의 인생을 동시에 살게되고 연륜에 따라 관심사도 바뀌어 나갔다.
처음에는 결혼한다고 만났으나 차츰 백일 돌잔치로 만나고 그러다가 상을
당해 만나는 경우도 가끔 생기고 있다. 한때는 내집마련을 위해
아파트시세가 주된 화젯거리였으나 차츰 정치문제 학원사태 경기논쟁등으로
이어지다가 요즘은 애들이 하도 시끄럽게 뛰어노는 까닭에 차분히 이야기를
나눌 분위기를 만들기가 어렵다. 장차 아이들이 재미없다고 부모를
따라다니지 않게 되면 우리들은 교육문제를 화제로 삼다가 차츰 회상에
빠져들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매일실업친구들 용기를 잃지 말자. 우리에게는 창창한 앞날이 보장돼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