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30분. 서울 강남구 역삼동 대아빌딩9층 사무실에선 어김없이
영어회화소리가 들린다. 컴퓨터 주변기기를 개발 판매하는 (주)다우기술의
시스템사업본부 하드웨어사업부.

들리는 소리로만 판단하면 영락없이 미국인이 가르치는 학원처럼 착각하기
쉬우나 정작 들여다보면 다르다. 강사는 사업부의 차승만영업과장(36)이고
귀기울이고 있는 수강생은 사업부직원 7명이다.

차과장의 영어회화가 남달리 유창한데는 나름대로 사연이 있다. 30대초반
무작정 도미,4년여동안 낯선곳에서 몸으로 배운 실력이 자랑스런 밑천이다.

그는 국내업체들이 세계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선 교두보격인 세일즈맨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여겨 회화 생활습관등 자신의 경험을 직원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대학졸업때까지만해도 그는 불문학을 전공한 어학도에 불과했다. 경희대
불문과를 졸업한 82년 당시에는 갓 설립된 외국어대 동시통역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다 83년 "돼지꿈을 꾸는 젊은이들"이란
제목으로 큐닉스사(컴퓨터주변기기메이커)를 다룬 매스컴의 기사를 보고
야망과 패기에 감동,공채1기로 입사해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이회사에서 3년간 일하면서 영업사원의 최고덕목이 "고객 상사및
부하직원에 대한 의리"임을 배웠다. 세일즈를 하기 위해선 고객들로부터
신뢰감을 얻어야 하고 숨가쁘게 펼쳐지는 판매활동에서 실적을 올리려면
사원들간의 끈끈한 유대감이 중요하다는 것도 이때 깨달았다.

지난 86년 자신의 상사가 큐닉스사를 떠날때 아무 미련없이 동반사표를 낸
것이나 6명이 장학회관 건물 방한칸을 빌려 (주)다우기술을 창업한 것도
이과정에서 쌓은 의리의 산물이다. 그러나 안주하기 싫어하는 방황끼가
발동했다.

"어학에 미련이 있기도 했지만 좀 큰 세계에서 보고 듣고 배우고 싶은
생각이 들어 87년 1월 회사에서 손을 떼고 무작정 미국행을 감행했습니다.
91년10월말 귀국때까지 제 인생에 큰 도움이 될 돈주고는 못하는 체험을
한거죠"
시애틀 센트럴 커뮤니티 칼리지학생에서 호텔 청소원,편의점
출납원,흑인동네 튀김집 점원으로 전전했다. 90년6월에는 자신보다 먼저
미국에 이민간 처가 식구가 여행중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장인이
현장에서 숨을 거두는 참극도 겪었다.

뉴저지주로 옮긴 후엔 두차례 낙방끝에 자격증을 따고 조경일을
시작,열심히 일한 덕에 돈도 벌고 대지 1천평짜리 집도 샀다. 그러나
이때에도 젊은이 특유의 방황벽이 살아났고 심각한 향수병에도 걸렸다.
이때문에 방황을 끝내고 귀국,다우기술에 다시 몸담게됐다.

지난5일 시애틀 친정집으로 나들이를 떠나는 아내 권경숙씨(32)와 아들
성민(4)이를 배웅하며 상념에 잠겼던 것도 미국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현재 차과장은 일을 하는데는 누구보다도 의욕적이다. 4년간의 외도를
보충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경쟁대상이 더이상 국내업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를 해 제품하청을 주는 일부터 부품수매 입출고체크
판매대금수급에 이르기까지 하루를 쪼개고 쪼개 써도 모자란다.
신제품발매를 위한 시장개척에 여념이 없다. 국내시장 60%를 점유하고
있는 VGA(비디오 그래픽 어댑터)의 마켓셰어를 끌어올리기 위해 필요한
곳이라고 생각되면 장소가 어디든 찾아가 상담을 한다.

"이제는 국내 회사들도 경쟁력을 갖춰 세계시장을 노려볼 때입니다"
세계시장에서 세일즈를 하려면 구매당사자들 보다 더 정확한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는 이때문에 아침시간에 영어회화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지난 1월 수출된 제품이 클레임이 걸려 엔지니어와 함께 대만엘 간적이
있습니다. 바이어에게 한마디로 설명을 못하는 걸 보고 이래선
국제경쟁력이 갖춰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죠"
"주과장"으로도 불리는 그는 일이 끝난후 직원들과 술자리를 자주 가져
외국인들의 식사매너 사고방식등을 전수하려 애쓴다. 그러나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외제품의 성능등을 들먹이며 구매를 거절하는 고객을
만날때면 참담한 심정이 들기 일쑤다.

죽어도 다우기술맨임을 고집하는 그는 조직 운영 회계등 관리자로서의
자격을 차근차근 쌓아 의기투합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신명나게 일하고
싶어한다.

세일즈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프로세일즈맨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베스트
세일즈맨"으로 불리기를 내심 원한다.

<박기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