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밤 우라가의 해안 일대는 불꽃의 바다를 이루었다. 사무라이들이
수없이 많은 화톳불을 피워놓고 밤을 새워 해안의 수비에 임했던 것이다.
혹시나 야음을 틈타서 미국의 수병들이 상륙해 오지나 않을까 해서였다.

흑선에서도 밤새 불을 밝혀 사무라이들의 야간 기습에 대비했다. 그리고
이따금 대포로 공포를 쏘아 위협을 가하기도 하였다.

쿵,쿵,쿵-밤바다를 뒤흔드는 포성과 와- 와- 밤하늘에 울려퍼지는
사무라이들의 함성은 일본의 역사에 새로운 새벽을 열려는 진통의 소리
같았다. 매우 상징적인 밤이었다.

페리의 위협적이고 강경하면서도 어디까지나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려는
평화적인 태도에 막부는 마침내 그와 교섭을 가지게 되었다. 엿새 뒤
페리는 부하 장병을 거느리고 구리하마(구리빈)에 상륙하여 바닷가에
임시로 마련된 응접소에서 우라가의 봉행(봉행:막부의 관직의 일종)과 만나
필모어 대통령이 쇼군 앞으로 보내는 친서를 전달했다. 그리고 사흘 뒤에
일본에서 떠났다. 쇼군의 회답을 가까운 시일내에 얻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서 페리는 명년 봄에 다시 내방하겠다는 통고를 하고,함대를 이끌고
중국으로 향했던 것이다.

쇄국 정책을 취하고 있는 막부로서는 그 친서에 적혀있는 내용을 선뜻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것은 곧 미국과의 국교 수립을
의미하고,나아가서는 개국(개국)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거절을 할수도 없는 처지였다. 군함을 이끌고 와서 공포를 쏘아댄 것으로
미루어 보아 거절을 할경우 틀림없이 무력을 사용할 터인데,화력(화력)이
월등한 그들을 상대로 싸워서 이길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설령 우선은
흑선을 물리칠수 있다 치더라도 대통령의 친서에 정면으로 도전을 한
셈이니 결코 미국이 그대로 주저앉을 것같지가 않았다.

이미 중국에 아편전쟁(아편전쟁)이 일어나 영국군에게 청나라가 굴복한
일이 있었고,막부도 그 사실을 잘알고 있었다.

기로에 선 막부는 단독으로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워서 교토에 있는
천황에게 보고를 하였다. 선반 위에 얹어놓다시피한 천황에게 보고를
하다니,막부로서는 스스로 머리를 숙이는 격이었다.

그리고 전국의 다이묘들에게도 의견을 구했다. 뿐만 아니라,막부와
각번의 관리들,나아가서는 일반 사무라이들에게까지 자유스럽게 의사
표시를 하도록 권장했다. 말하자면 여론을 환기시켜서 국론을 통일해
보려는 속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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