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끌고가는 힘은 엔진에서 나온다. 한국경제를 자동차에
비유한다면 엔진의 연료는 정신적으로 왕성한 의욕이고 물질적으로는
자금이다. 자동차의 성능은 기술이고 경영자는 운전자에 해당한다. 이
자동차가 지금 고장을 일으켜 속도가 떨어지고 있고 다른 경쟁차들이
우리를 앞지르고 있다. 수리를 해야할 판이다. 김영삼차기정부가
수리소역할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완전히 새차로 바꿀 여유는 없다. 고장원인을 정확히 진단하여 고치면
된다. 의욕이 지나쳐 엉뚱한 곳까지 마구 건드려 더 많은 고장을 자초하면
큰 일이다. 수리하거나 관리하는 사람은 제작자가 아니다. 제작자처럼
차를 다루다가는 자동차는 더 엉망이 될지 모른다. 우선 수리하는
자세부터 가다듬어야 한다. 정확한 진단을 하면 엉뚱한 수리는 자제된다.

우리의 기술수준은 아직도 낮기 때문에 강한 의욕과 원활한 자금의
뒷받침으로 이를 보완해야 한다. 그런데 정치적 민주화로 왕인사상에선
벗어났지만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왕토사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정부가 경제를 움켜쥐고 각종 행정규제를 남발하여 민간의 자발적
의욕과 창의를 속박하고 있는 것이다. 전에는 경제는 발전하는데 민주화가
이를 따르지 못해 문제였는데 이제는 민주화를 경제가 따르지 못해 문제가
되고있다.

각종 비리도 정부의 경제장악유습에서 파생한다. 공공서비스부문에서
뇌물 부패및 불공정관행의 수준을 나타내는 청염도가 싱가포르는 90%에
육박하고 홍콩 일본은 60%를 넘고 있고 대만 말레이시아도 40%를 상회하고
있는데 한국은 40%를 밑돌고 있다. 이들 나라의 국가경쟁력이 한국을 앞서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경제의 고장원인중 하나이다.

금융부문의 어려움이 또한 한국경제의 큰 제약이다. 연이은
중소기업사장들의 자살이 이를 대변한다. 경쟁국보다 2~3배나 높은
금융비용으로 해외시장에서 싸운다는 것은 무리이며 국내시장 방어도
한계에 부닥쳐 있다. 그나마 돈의 회전이 느린 제조업체는 은행에서
푸대접받기 일쑤다. 분명한것은 이런 조건으로는 한국경제를 되살릴수
없다는 사실이다. 경쟁국들은 불황극복을 위한 투자에 열성인데 우리는
불황과 투자위축이 동반되어 경제가 어떤 지경에 빠질지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다.

경영자들이 정부나 정치권력의 향배에 지나치게 집착하면서 사업을
정국기상에 연계시키는 것도 탈이다. 내년설계가 늦어지고 겨우 엉성한
뼈대만 짜는 현실이 그같은 예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그동안 정책에
일관성이 없었고 정권이 바뀔때 마다 경제의 룰도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또한 권부와 어떤 인연을 맺느냐에 따라 사업의 성쇠가 뒤바뀐 과거의
경험에도 연원한다.

근로자들도 이미 가난이 동기를 유발하던 세대가 아니다. 이것은 좋든
싫든 한국경제의 새 조건이다. 이제 새로운 동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민주화의 진행으로 기회의 균등뿐 아니라 결과의 균등까지 보장되어야
한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그러면 누가 열심히 일하려 할것인가.
일하는만큼 대가받는 사회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기회의 균등은 보장하되
결과의 차등화는 수용되어야 동기가 유발될수 있다. 기업에도
근로자에게도 기회의 균등을 통한 경쟁원리가 적용돼야 경제활력을
되찾을수 있을 것이다.

김영삼차기정권은 많은 경제개혁공약을 했고 이를 서둘러 조기에
집행하겠다고 한다. 이중에는 세제개혁도 들어 있다. 세제는 현실의
변화에 따라,또는 보다 정의로운 사회에 부응하기 위해 개혁돼야한다.
그러나 전제가있다. 현재의 세제아래서 공평하고 철저한 징세가 이뤄지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즉 정부내부로부터의 개혁이 전제되지않으면 많은
개혁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점이다.

큰소리를 덜 내고 차근차근 실천하는 정부로부터 개혁은 출발해야 한다.
한꺼번에 안해도 좋다. 과욕이 앞서 경제를 온통 흔들어놓아도 경제는
되살아날수 없다. 과거에 그런 예가 많았다. 정부의 실패가 현재의
경제난과 무관하지 않기때문에 경제의 큰몫을 민간주도에 맡기고 정부는
공공부문의 경쟁력향상과 성실한 관리자의 역할로 되돌아가야 한다.

정부가 시급히 해야할 일은 김리등 기업환경을 경쟁국수준으로 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행정개입을 줄이면 기업들이 다시 뛸수 있다. 과학기술도
진흥될수 있다. 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모든 것에 개입하려는 과욕을
부리면 뒤죽박죽이 될지 모른다. 경제침체의 실상을 정확히 진단하여
정치적 치료가 아닌 경제적 치료로 우리경제를 되살려야 한다.

올 한해 정치에 지불한 경제의 대가를 되새겨 보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