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은행 명동지점장의 자살사건으로 비롯된 파동때문에 자칫하면
금융계전체가 또 한바탕 몸살을 앓게될 것같다. 이른바
장영자사건,명성사건등 80년대초반에 터진 몇몇 대규모 금융사건들의
기억이 아직도 새로운데 금융시장개방과 본격적인 금리자유화를 앞두고
비슷한 사건을 격게된 우리의 마음은 안타깝기만 하다.

아직 이번 사건의 내용이 완전히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가짜
양도성예금증서(CD)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CD를 중심으로
채권유통시장이 위축되고 시중금리가 오름세를 보이는등 사건의 파장이
번져가고 있다. 자칫하면 금융시장의 신용질서를 크게 어지럽힐수 있는
이번 사건을 하루빨리 수습하기 위해서도 금융당국의 철저한 조사와
대책마련이 필요한 때이다.

이번 사건에는 아직도 수사당국의 조사가 계속중이긴 하지만 궁금한
점이한두가지가 아니다. 딸자식의 결혼을 앞두고 자살해야할 정도로
급박했던 사정은 무엇인가,이지점장의 죽음은 과연 자살인가,지점장
재량범위나 관련규정과 관계없이 수백억원의 거액대출을 은행경영진이
모를수 있는가,현금동원능력이 좋고 더싼 금리로 얼마든지 돈을 꿀수
있었던 롯데가 거액의 신탁자금을 대출받아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나 이 모든 궁금한 점들 말고 우리가 주목해야할 두가지 사항이 있다.
하나는 사채돈이 판을 치는 금융시장의 비정상적인 구조가 여전하다는
사실이다.

사채자금을 비롯한 비제도권 금융시장의 규모가 지나치게 커지면 돈의
흐름이 뒤틀리고 투기를 조장하는등 경제질서를 어지럽힐 가능성이 커진다.
따라서 정책당국은 단자회사 상호신용금고등의 설립을 통해 사금융시장을
제도금융권으로 끌어들이려 노력해왔다. 그러나 70년대 초반의
"8.3사채동결조치"뒤에도 비제도권 금융규모는 계속 커졌을 뿐만 아니라
은행등 제도권 금융기관을 매개로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공금리와 시중실세금리의 괴리,제도권안에서도 은행에서 제2금융권으로
돈이 쏠리는 파행현상,금리격차를 보전해주기 위한 이른바 "꺾기"등
편법만연 등을 꼽을수 있다. 이밖에 금융사고만 나면 사채자금의 유통이
얼어붙어 금융시장이 자금부족과 금리상승의 어려움을 겪는것이 보통이다.

정책당국은 금리를 낮춰 기업의 금융부담을 덜어주고 돈이 생산적인
제조업쪽으로 흘러가게끔 규제와 유도를 게속했으나 별 효과가 없었음을
이번 사건을 통해서 또다시 확인하게 된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할 또다른 사실은 국내금융기관의 체질개선이 아직도
멀었다는 점이다. 신용이 생명인 금융기관에서 온갖 부조리와
변칙불법거래가 벌어지는 것은 물론 심지어 불특정다수의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고 신용질서를 뒤흔들수 있는 유가증권인 CD를 불법으로 발행
유통시켰다는 사실에서 할말을 잊게 된다.

국내금융시장이 개방되면 금융계의 사정은 크게 달라지게 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예금만 끌어오면 돈쓸곳은 얼마든지 있는 시절은 다시
오기 어렵다. 이제는 신용이 좋은 우량고객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유돈을 채권이나 주식에 적절히 투자하는
능력배양도 매우 필요하다.

거액의 해외자금이 짧은 기간에 들어오고 나갈때 있을수 있는 충격과
국내외 금융시장에서 돈을 끌어올때 발생할 환위험에 대비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기구축소와 불필요한 인력감축은 물론 부실채권의 발생도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이처럼 서둘러 해결해야할 과제가 많고 금융환경의 변화에 대비할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은 지금 국내 금융기관들은 고객이 맡긴 돈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신용질서를 지키는 가장 기본적인 책임마저 지키지 못하고 있으니
한심할 뿐이다.

아울러 이번 사건이 시중금리수준이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변칙으로
끌어들인 돈을 굴리는 과정에 무리가 오면서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중요하다. 금리자유화가 진전되고 금융시장이 개방될수록
금융기관경영에 따르는 위험은 커질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금융사고를 미리 막고 금융환경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금리자유화와 금융실명제등 제도적인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고
본다.

금융사고가 있을때마다 감독기관의 문책과 재발방지의 다짐이 있었으나
최근에만해도 제일생명사건,신용금고불법대출사건등 사고가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다. 구조적인 문제점을 고치지 않고 임시 미봉책만 되풀이
하면 "꿩잡는게 매"라고 눈앞에 닥친 현실적인 이해에 무력할수밖에 없는
것이 금융계의 실정이다.

신상필벌의 원칙이 성역없이 관철되고 제도개혁을 과감히 실시할때만이
우리금융계는 거듭 날수 있다.